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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

편집국 기자I 2020.12.15 06:00:00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변호사회장] 전운이 감돈다는 표현이 적당한 것 같다. 올 한해 동안 ‘추ㆍ윤 갈등’이라는 기사가 거의 매일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맹공을 가하는 형국이다. 참여정부 시절 단 한 차례 발동되었던 법무부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발동이 올 한해에만 3차례(한명숙 사건, 채널A 사건, 라임 사건) 있었고, 15일 2차 징계위원회를 목전에 두고 있다.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어떻게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에 대해 징계를 눈앞에 두는 상황이 되었을까.

원래 감찰, 수사와 같은 시스템은 살아 있는 권력 입장에서는 몹시 불편해야 한다. 그것이 곧 헌법에서 선언한 법치주의고 권력분립원칙이다. 그러나 과거를 돌이켜보면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역할을 해야 하는 시스템은 설치되었지만 제대로 작동된 적은 그리 많지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스템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가 반복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 시절을 돌이켜보자.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시작된 검찰의 국정원 댓글수사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이 걸린 사안이었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혼외자 의혹이 불거지고 범무부의 감찰이 착수되자 사퇴했다. 그러나 남은 수사팀은 징계(징계를 받은 팀장은 다름 아닌 윤석열 총장이다)를 받는 등 여러 난관을 딛고 관련자들을 기소하여 유죄판결을 이끌었다. 2013년 검찰은 분명히 권력을 견제하는 제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채 총장이 사퇴하고 검찰은 어느새 정권과 한몸이 되었다. 2014년 12월 돌출한 ‘정윤회-십상시 문건’을 덮어 버리고, 2016년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을 감찰한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수사한 것도 역시 검찰이었다. 얼마 후 편안한 자세로 검찰에서 조사받는 우병우 수석의 사진이 등장했다. 검찰개혁의 목소리가 2016년 겨울 광화문에 울려 퍼진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적폐수사를 할 때만 해도 밀월관계를 유지하던 정권과 윤 총장의 관계는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에 이은 유재수 감찰무마, 환경부 블랙리스트, 최근 월성 수사로 완전히 금이 갔다. 검찰은 억울할 수도 있다. 외관상 권력에 대한 수사를 했기 때문이다. 검찰수사가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거꾸로 검찰이 검찰개혁에 순응했다면 지난 1년 이상 진행된 각종 수사들을 모두 은폐했어야 마땅했는지 묻고 싶다. 그렇게 은폐하지 말라는 것이 검찰개혁의 명분이 아니었나. 곧 출범할 공수처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바램도 고위공직자에 대한 엄정한 수사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추미애 장관이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윤 총장에 대한 징계는 ‘총장 한 사람만 바꾸면 검찰조직을 다룰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검경수사권조정법안을 통과시키면서도 특수수사와 같은 검찰의 직접 수사 권한을 고스란히 유지 시켰기 때문이다. 세간에 떠도는 ‘친정권’ 검사장 중 누군가를 총장으로 임명하여 검찰의 날카로운 칼날을 유용하게 사용하고 싶은 유혹이 있는 것이 아닌지 자꾸 의심이 든다.

감찰을 담당했던 평검사의 양심선언에 이어 감찰을 주도했던 고위 간부들이 위법한 감찰을 했다는 의혹이 드러난 마당에, 법원 결정으로 직무에 복귀하자마자 윤 총장에 대한 중징계를 강행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에 이를 것이다. 전세대란과 코로나로 힘겨워하는 국민들에게 이런 혼란을 안겨다 주는 것은 전적으로 정권의 책임이다. 추미애 장관도 윤석열 총장도 임명권자는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바둑에 ‘봉위수기(逢危須棄)’라는 격언이 있다. 자신의 돌이 위험에 처하면 과감히 버리라는 뜻이다. 이미 감찰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가 부당하다고 의결했고, 여론조사결과도 추 장관에 대한 책임으로 기운 현실이다. 따라서 무리한 징계를 이끈 추 장관을 사임시키고, 윤 총장에 대해서는 그가 지휘했던 수사가 법원판결 결과 무리한 수사라는 것이 증명될 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 최선의 수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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