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트 스페이스111. 연극 ‘문밖에서’(작·연출 이양구, 제작 극단 해인·프로젝트 타브) 공연이 끝난 뒤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배우로 무대에 섰던 김숙자(71) 할머니가 관객 질문에 답하다 눈물을 보였다. 연극을 통해 자신의 삶에서 달라진 게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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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이곳에서 개막한 ‘문밖에서’는 경기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K-6 캠프 험프리즈 근방 미군 기지촌에서 과거 위안부로 살았고 현재 독거노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여성 노인들의 삶을 그린 연극이다. 김숙자 할머니를 비롯해 권향자(81) 할머니, 김경희(72) 할머니 등 실제 미군 위안부 출신 여성 노인들이 배우로 출연해 연극계의 관심을 모았다.
김숙자 할머니는 이들 중 가장 먼저 배우로 연극 무대에 섰다. 2011년 ‘숙자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대 있는 곳까지’, 그리고 2018년 초연한 ‘문밖에서’에 출연했다. “남한테 손가락질만 받고 살았다”는 김숙자 할머니는 연극을 만난 뒤 제목처럼 문밖에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관객과 함께 나누고 있다. 눈물을 닦은 김숙자 할머니는 “연극을 통해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됐고 연극을 하는 지금이 너무 좋고 행복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문밖에서’는 극단 해인이 미군 위안부 출신 여성 노인들의 트라우마 치유와 사회적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제작한 연극 ‘일곱집매’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이양구 연출은 작업 과정에서 미군 위안부 출신 여성 노인들이 가진 강렬한 표현력에 주목하게 됐고 이들이 ‘일곱집매’ 출연 배우들과 함께 호흡하는 무대로 ‘문밖에서’를 기획했다.
작품은 과거 미군 위안부로 일했던 금옥의 고독한 죽음을 시작으로 1976년 미군 전용 클럽, 1992년 기지촌 위안부 자치회 창립총회, 그리고 배밭에서 일하며 여생을 보내는 현재의 미군 위안부 여성들의 생애를 펼쳐보인다. 김숙자, 김경희, 권향자 세 할머니는 실제 이름의 배역으로 등장해 자신들의 경험을 증언하듯 연기한다.
70년대 정부로부터 ‘민간외교관’ ‘달러벌이 역군’ 등으로 불렸지만 사회적으로는 외면과 질타를 받았던 미군 위안부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이면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러나 작품 분위기는 마냥 어둡지 않다. 천연덕스러운 애드리브 연기를 선보이는 세 할머니의 열연에 객석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제목인 ‘문밖에서’는 할머니들이 이제야 세상 밖으로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양구 연출은 “큰 의미를 두고 지은 제목은 아니지만 할머니들이 연극을 하면서 이제 문밖으로 나온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무대에 선 세 할머니가 바라는 것은 더 많은 관객과 자신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이다. 할머니들을 대표해 김숙자 할머니는 “언제까지 연극을 할지 모르겠지만 무대에 계속 서고 싶다”며 “우리 공연에 관심을 가져주고 사랑해주면 좋겠다”고 기대를 전했다. 공연은 8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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