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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불매운동 40일]"아베는 미워도"…손 맞잡으려는 한·일 시민들

김보겸 기자I 2019.08.12 06:18:00

''반일'', ''반 아베'' 구분하자는 시민 움직임
일본서도 "우리는 한국 시민과 연대"
연대의사 표현 일본시민 소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6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서 중구청 관계자가 반일 깃발을 설치하고 있다. 해당 깃발은 ‘일본 정부와 일본 시민을 동일시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에 설치 5시간여만에 철거됐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인한 한·일갈등이 커지는 가운데 ‘반일’과 ‘반 아베’를 구분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일 시민끼리 서로 연대해야 효율적인 반일 운동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베 피로도’에 지친 일본 시민사회와 힘을 모아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를 압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일본 시민과 싸우자는 것 아냐” 비판에 ‘반일 깃발’ 내린 지자체

지난 6일 서울 중구청이 시민 항의로 세종대로에 설치한 ‘노 재팬’ 깃발을 모두 내렸다.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찾는 거리에 반일 깃발을 설치하는 것은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을 동일시해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 있다는 반발이 거세게 일었기 때문이다.

중구청이 노재팬 깃발 1100개를 걸겠다고 밝히자마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결정을 중단해 달라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청원 게시자는 “우리는 일본과 관계를 끊으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서울 중심에 저런 깃발이 걸리면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 관광객들이 모두 불쾌해할 것이고 일본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청원은 6일 오후 3시까지 1만6000여명의 동의를 얻었고 중구청은 설치 5시간여 만에 깃발을 모두 거뒀다.

한·일관계 악화에도 한국을 찾은 일본 관광객에게는 적대적일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공감을 얻고 있다. 대학생 안승민(23)씨는 “일본 불매운동에는 동의하지만 굳이 일본인 관광객에게까지 적대감을 표출할 필요가 있나”라며 “오히려 친절하게 대한다면 일본 정부나 극우언론이 전하는 가짜뉴스가 왜곡됐다는 사실을 알려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은 4차례에 걸쳐 한국을 여행하는 일본인들에게 ‘한국은 안전하지 않다’며 여행주의보를 발령한 바 있다.

한국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도 적대감을 못 느꼈다는 반응이다. 도쿄에서 어머니와 함께 명동을 찾은 카와구치 미유키(42)씨는 “지난 4월에도 한국에 왔었는데 상냥한 시민들이 많았고 그때 좋은 기억을 가지고 또 오게 됐다”며 “요새 한국 편의점 진열장에서 일본 맥주가 빠져나가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고 정부도 한국 여행이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좋은 기억 때문에 그렇게 걱정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미유키 씨는 또 “수출 규제 이후 체감상 한국이 크게 달라진 건 없다”며 “한 식당 주인 아주머니는 ‘잘 왔다’며 나갈 때 악수도 권했다”고 덧붙였다.

일본인도 외치는 ‘NO 아베’ (사진=연합뉴스)
◇“한국이 주장하는 건 반일이 아닌 반아베”…한일 시민 공감대

일본 시민들도 한국에서 일어나는 반 아베 움직임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에서 일고 있는 시위는 일본 전체가 아닌 일본 정부에 대한 항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인지한다는 평가다.

지난 4일 일본 도쿄 신주쿠역 앞에서는 아베 정권을 규탄하는 집회가 열렸다.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특정 단체 소속이 아닌 일반 시민과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집회를 주최한 기노토 요시즈키(34)는 트위터를 통해 “한국의 반 아베 집회가 반일 집회로 보도되는 것을 보고 한·일관계가 더 악화돼선 안 된다는 생각에 집회를 열기로 했다”고 밝혔다. 집회 참가자들은 ‘선거를 위해 혐한 부추기지 말라’, ‘일본은 한국 시민과 연대한다’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이어갔다. 이들은 사흘 만에 일본 도쿄에 위치한 아베 총리 관저 앞에서 다시 집회를 열고 아베 정부를 비판하며 한일 시민의 연대 필요성을 주장했다.

일부 일본 시민들은 지지 의사를 표현했다. 일본 네티즌 ‘Kishimoto’는 트위터에 “일본의 매스컴은 ‘NO 아베’ 시위를 반일 시위라고 보도하고 있다”고 적었다. ‘log10203010’은 “아베는 불편한 진실을 (일본)국민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 국민의 대부분은 한국은 절대악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아베를 거부하는 마음은 (한국인과) 같다”고 강조했다.

◇일본 내 무관심 때문에 연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물론 이러한 시민들이 일본 내에서 소수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7일 학술단체협의회가 주최한 시국 토론회에서 천정환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일본에서 한국 소설 ‘82년생 김지영’ 열풍이 일고, K팝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만 반 아베 운동을 보통의 일본인들은 잘 알지 못한다”며 “한·일 시민 연대는 일본 대중 특유의 무관심 때문에 실행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일본 시민사회의 특성을 고려하면 한·일 시민 연대 움직임이 고무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사회적 이슈가 터진다 해도 한꺼번에 결집하는 일이 드물다”며 “그런 사회에서 이번에 일부 시민들이나마 반 아베 시위를 열고 의견을 표출했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주장했다.

남 교수는 일본의 시민사회를 통해 아베 정부를 압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남 교수는 “일본 내에서 정부 반대 의사를 표출하는 시민사회단체는 소수이긴 하다”면서도 “하지만 일본 사회 내에서 ‘아베 피로도’가 높아진 만큼 시민사회를 통해 정부를 압박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 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 교수는 “그런 점에서 이번에 ‘중구청 반일 깃발 해프닝’은 일본 시민사회에 ‘한국의 분노 지점이 일본 시민들이 아닌 일본 정부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시민들끼리는 연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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