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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천 대표의 배 농장인 마루농원은 충남 천안시 직산읍에 위치해 있다. 농번기인 겨울철이지만 최 대표는 가지치기(전정) 작업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예년 같으면 인근 농장주들끼리 품앗이 형태로 서로 가지치기 작업을 도와줬지만 올해는 과수화상병 우려 때문에 혼자 약 2.6ha(옛 약 8000평) 규모의 밭을 혼자 다 처리해야 한다. 과수화상병이 작업 도구 등을 통해 확산했다고 알려지면서 농가들의 공동 작업을 지양하고 있어서다.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지역은 해외 수출을 할 수가 없다. 배 수출 비중이 높은 천안 지역에서 과수화상병이 퍼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배는 해외에서 인기가 높은 과일 중 하나다. 현재 미국, 대만 등으로 주로 수출하고 있으며 베트남, 호주, 캐나다로도 진출 지역을 넓히고 있다. 특히 최 대표 농장이 위치한 천안은 국내 배 수출 1위 지역이다. 천안시의 지난해 배 수출 물량은 약 6400t으로 전체(약 3만t) 30% 이상을 차지했다.
최 대표는 “서양쪽은 배를 숙성해 먹는 후숙과일 형태인데 우리 배는 생과 형태로 먹어 시원하고 맛도 좋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중에서도 천안 지역은 배의 저장력이 우수해 미국까지 배로 한달 동안 이동해도 품질과 신선도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선친으로부터 배 농장을 물려받은 최 대표는 지난 30여년간 꾸준히 과수농사를 지으며 배 수출에 일조하고 있다. 그는 “일반 농가 수출 비중은 10% 정도인데 우리는 연간 생산량(약 200t)에서 많게는 30~40% 가량을 수출하고 있다”며 “선친 때부터 수출에 관심이 많았고 천안 지역 농협과 조합원들이 일찌감치 수출의 중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다만 배는 자유무역협정(FTA)의 직접 피해 품목은 아니지만 각국 FTA 체결로 다양한 종류의 과일이 수입되면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다. 최 대표는 “배가 보통 10월부터 다음해 6월까지 출하되는데 이때 맛과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한 과일들이 들어오면서 타격을 받는다”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으로 열대과일 관세가 추가 철폐돼 어려움은 더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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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공급이 이미 포화 상태인 내수시장에서 배 공급이 늘어날수록 가격 하락은 불가피한 만큼 해외 수출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일정 물량을 꾸준히 수출함으로써 해외 판로도 넓히고 국내 수급도 관리하는 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최 대표는 “국내 가격이 좋다고 내수만 공급하다 보면 해외 수출이 끊기고 결국 공급 과잉으로 모두가 피해를 볼 것”이라며 “안정적인 수출망을 유지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배의 해외 수요는 늘어나고 있지만 좀 더 적극적인 농가들의 수출 참여를 위해 정부의 정책 지원도 필요하다. 수출 가격이 내수 가격보다 낮다면 정부가 이를 보전해 안정적인 수출 물량을 확보함으로서 과수가격을 안정시키고 수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어서다.
최 대표는 “수출 신뢰도도 중요한 만큼 시장가격에 따라 움직이는 농가를 유인하기 위한 가격 안정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정책적으로 수출 선도농가를 선정하고 육성하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농산물 수출 물류비 보전 폐지에 대한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정부는 지금까지 농산물을 수출할 때 마케팅비와 물류비 등을 지원했지만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 따라 오는 2024년부터 철폐된다.
최 대표는 “(물류비 보전 폐지 시) 15kg당 늘어나는 물류비가 5000원 정도로 예상되는데 수십~수백톤의 수출물량을 생각하면 부담이 상당히 커지게 된다”며 “물류비 부담을 안게 되면 수출 가격 경쟁력이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FTA를 통한 수입산 과일들의 국내 시장 공략을 수출로 타개하고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직접 보전이 불가능해지는 만큼 다른 경로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최 대표는 “농사를 시작한지 30여년간 배 출하가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생산비나 노동비는 크게 늘었다”며 “농민들이 맘 놓고 농사를 짓도록 원가 부담을 줄일 방안을 모색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