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선 쿠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의 임기는 꽤 남은 만큼 아베노믹스의 경로엔 이상 없다고 애써 안도하지만 한 가지 빠뜨린 점이 있습니다. 바로 장기집권 정권 후엔 어떠한 정권도 오래 정착을 못하고 계속해서 바뀌는 일본 정치 특유의 불안정성입니다.
◇ ‘쿠로다는 안 변한다’ 금융시장은 침착
지난달 28일 아베 총리는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이 악화됐다면서 사임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날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한때 2.6%나 하락, 엔화 역시 급등하는 등 아베 총리 사임의 영향을 반영하기도 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임기 중 닛케이지수를 2.3배나 끌어 올린 장본인입니다. 그런 아베 총리가 퇴진하면 시장이 후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진 것이죠.
금융시장은 애써 담담한 모습입니다. 일단 ‘아베노믹스’를 함께 끌어온 쿠로다 총재의 임기가 당장 2023년까지 남았기 때문입니다. 총리가 바뀌는 상황에서 일본은행의 총재까지 바뀔 가능성은 적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이 이어지는 가운데 양적완화 정책을 뒤엎기도 힘들다는 주장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 1년 걸러 총리 바뀔 수도…쿠로다도 불안
그러나 염두에 둬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근래 일본에선 장기집권한 정권이 끝난 뒤 들어선 정권은 오래 버티질 못하고 계속해서 바뀌어왔다는 점입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정권(1982년 11월~1987년 11월·71~73대) 뒤 들어섰던 정권들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2001년 4월~2006년 9월·87~89대)이 들어서기 전까지 모두 1~2년, 아주 길어봤자 3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갈렸습니다. 1987년에서 2001년까지 약 14년 동안 재임한 총리의 숫자만 10명입니다. 거의 1년에 한 번씩은 바뀌었단 얘깁니다. 고이즈미 정권 이후 2차 아베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의 6년 동안에도 총리가 6명 바뀌었을 정도죠.
아베 총리 재임 시기 일본 니케이 지수가 폭등할 수 있었던 건 이런 혼란스런 정국을 그가 안정시켜줬기 때문입니다. 아베 총리가 오래 정치를 이끌 것이라는 믿음 하에, 아베노믹스의 지속 여부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죠. 만약 다시 1년 마다 총리가 바뀌는 ‘단명 정권’이 이어지는 상황이 온다면 일본 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의 심리는 다시 냉각될 수 있습니다. 총리가 계속해서 바뀌는 상황에서 쿠로다 총재가 알아서 자리에서 내려올 수도 있는 거고요.
◇ 코로나·올림픽…후임자 과제 만만찮아
심지어 아베 총리의 바통을 이어받을 후임자의 과제도 만만찮습니다. 일단 중의원 해산을 1년 앞둔 시점에서 파벌싸움이 커질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현재 차기 총리로 여러 사람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누구도 아베 총리 만큼 유력한 사람은 없다는 게 일본 국내의 여론입니다.
여기에 당장 후임자는 오는 가을께 내년으로 미뤄진 도쿄올림픽의 개최 가부를 다시 결정해야 하죠. 코로나19 확산세가 여전할 경우 올림픽 취소의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을~겨울 다시 기승을 부릴 코로나19와의 사투도 시작해야 하고요. 안그래도 기반이 탄탄하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남겨진 과제들은 산더미이다 보니 언제라도 정치적 역풍이 불어올 수 있는 상황인 셈이죠.
◇ 글로벌 자금 어디로 흐를까…엔화에 초점
그래서 일본 시장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일단 글로벌 자금의 배분 조정이 본격화되는 8~9월말경 투자가들이 일본의 자금을 어디로 옮겨갈지 주목하고 있죠. 일본에서 자금을 빼서 이웃나라인 중국이나 한국으로 옮겨갈 수도 있으니까요.
만약 다시 엔화가 강세로 돌아선다면 외국인들이 한국 시장에 다시 유입될 수도 있습니다. 보통 엔화가 강해지면 일본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는데요, 일본 수출품들과 상당부분 경합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수혜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엔화가 강했을 때마다 한국의 자동차 기업들의 주가가 올랐던 기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