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사고는 후방 차량이 필자가 타고 있던 차량을 그대로 들이받은 사고로 후방 차량 운전자에게 100% 과실이 인정되는 사고였는데, 문제는 사고의 가해차량이 가족한정 특약에 가입돼 있었으나 당시 운전자는 차주의 형인 관계로 특약 위반에 해당되어 자동차 종합보험으로 사고처리를 할 수 없다는데 있었다.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였을 때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이하 “자배법”)에서는 자동차보유자에게 보험가입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한편, 보험회사는 자동차보유자가 책임보험 및 의무보험에 가입하려는 때에는 원칙적으로 계약체결을 거부할 수 없으며(자배법 제24조 제1항), 의무보험을 가입하려는 자와의 계약 체결을 거부한 보험회사에 대해서는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고(제48조 제2항 제3호), 책임보험과 의무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자동차보유자에 대해서도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제48조 제3항 제1호).
즉, 보험회사에서 정한 보험약관이 자배법에서 정한 의무보험 가입 조항과 상충되므로 약관에 따라 대물배상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의무보험에 관한 자배법 제5조 제2항이 당사자들의 의사에 따라 달리 정할 수 있는 임의규정에 해당될 때의 얘기이고, 해당 조항이 강행규정이라면 약관으로 그 효력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보험사의 위 주장은 법적으로 인정될 수 없는 주장이다.
또한 책임보험의 경우에는 약관으로도 효력을 배제할 수 없고 이러한 이유로 보험약관에서는 대인(I)의 경우 특약 위반으로 인한 손해도 배상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는데, 책임보험에 관한 제5조 제1항과 의무보험에 관한 제5조 제2항은 법문상 구조가 동일하며, 두 조항 모두 “자동차보유자”에게 “자동차의 운행으로”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지는 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있을 뿐 자동차보유자의 책임이 보험사와의 합의에 따라 배상의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거나 책임 범위를 한정하여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은 없다는 점에서 의무보험과 책임보험을 달리 볼만한 이유도 없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하면 의무보험에 관한 자배법 제5조 제2항도 강행규정으로 해석되므로, 약관에서 그와 달리 규정하더라도 이는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으로서 적어도 자동차사고의 피해자에 대해서는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자배법 제3조는 자동차사고에 따른 자동차 운행자의 사실상 무과실 책임을 규정한 것으로 자배법에서 그 책임에 따른 배상에 대해 여러 가지 특례를 규정하고 있을 뿐인데, 단지 그 이유만으로 제5조 제2항을 임의규정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배법에서는 “자동차보유자”에게 의무보험 가입을 강제하고 있는데, 여기에서의 자동차보유자는 “자동차의 소유자나 자동차를 사용할 권리가 있는 자로서 자기를 위하여 자동차를 운행하는 자”를 의미하므로, 결국 자동차의 소유자는 운전자에 상관 없이 자동차가 운행됨으로 인해 발생하는 재물 손해에 대해 2,000만원 한도 내에서 배상할 책임을 부담하는 보험에 가입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험회사를 감독할 의무가 있는 금융감독원 조차 피해자 보호를 위해 법에서 정한 최소한의 보호장치 마저 무시하는 보험회사들의 잘못된 행태를 용인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만일 보험회사의 위 특약이 유효하다면, 결국 운전자 한정 특약에 가입한 자동차보유자들은 특약을 벗어난 교통사고에 대해 대물배상 의무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것이 되고, 보험회사들은 의무보험 가입을 거절한 것이 되므로 운전자 한정 특약에 가입한 모든 차주와 보험회사에게 과태료가 부과되어야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적폐 청산이 최근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인데, 자배법은 교통사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으로서 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피해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 장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보험료 상승이라는 막연한 이유만으로 보험회사들의 위법한 약관을 용인하는 감독당국의 행태는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또다른 적폐이다.
법무법인 제하 변호사 강상구(skkang@jehalaw.com)
* 레이싱 트랙 주행을 비롯하여 타임 트라이얼 레이스에도 참가하는 등 다양한 모터스포츠 활동을 펼치고 있는 강상구 변호사의 [강변오토칼럼]을 연재합니다. 강상구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수료 후 법무법인(유한) 태평양에서 자동차산업과 관련한 기업자문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고, 자동차부품 관련 다국적기업인 보쉬코리아에서 파견 근무를 하였으며,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도 보유하고 있는 등 자동차와 법률 모두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 변호사는 현재 법무법인 제하의 구성원 변호사로, [강변오토칼럼]을 통해 자동차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다양한 법률문제 및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분석과 법률 해석 등으로 이데일리 오토in 독자들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