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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이미 경험하고 있듯이, 물질적 자본과 인적 자본의 투입만으로는 경제와 사회의 선진화가 달성되기 어렵다. 사회간접자본처럼 눈에 보이는 자본 외에도 사회 구성원들 즉, 개인과 기업, 정부 등 사회 주체들을 협력적 관계로 연결하는 사회적 자본이 충분해야만 경제발전과 사회 안정을 동시에 이룰 수 있다. 같은 물적 자본과 인적 자본을 투입한다고 해서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그 사회 구성원들의 관계가 얼마나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경제, 사회적 성과가 나타날 수 있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나 세월호 참사 등은 기업과 정부의 신뢰도를 저하시키는 요인이 된다. 국가 또는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불신을 갖게 하는 것이다. 신뢰가 떨어진 정부의 정책추진이나 발표를 국민이 온전히 믿고 따르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소비자의 안위와는 상관없이 이익만 챙기는 기업에 대한 신뢰 역시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에 대한 불신을 ‘반기업 정서’로만 치부해서는 사회적 자본이 회복될 리 만무하다.
두려운 것은 신뢰의 악순환이다. 가령, 신뢰가 떨어진 정부의 정책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면, 그 때문에 신뢰가 더 떨어지게 된다. 사회적 자본이 지속적으로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이런 현상이 우려되는 조사가 있었다. 지난 4월에 보도된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대학생들의 국가(정부, 공공기관)와 사회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이다.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인도, 브라질 등 7개국 대학생 중 꼴찌였다. 한국 대학생들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부정부패를 꼽았다. 당연한 결과로 미래사회와 삶에 대한 기대 수준 역시 7개국 중 6위로 최저 수준이었다. 불신이 세대를 넘어 확대 재생산되는 사회에서 사회적 자본의 확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짐작하는 대로 정부기관 중에서도 신뢰도 최하위는 역시 국회다. 사회적 자본의 확충은 고사하고, 까먹고 있는 것이다. 2015년 8월~9월에 진행됐던 조사 결과인데,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여지없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불신은 지난 4.13총선에서 집권여당을 제2당으로 격하시키는 형태의 심판으로 표출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 분명해진 것이 있다. 투표만으로 정치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총선 직후 처참한 표정을 짓던 여당이나, 민심을 받들겠다고 하던 야당에게서 치열한 반성이나 긴장이 사라진 지가 벌써 오래되었다. 변화를 위한 구체적 비전의 제시는 찾아볼 수 없다. 당권을 둘러싼 계파 간 갈등과, 국회의장 등 감투를 둘러싼 당리당략만 보일 뿐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에게는 앞으로 있을 대선과 지자체선거, 그리고 4년 후의 총선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의 방법이 없다. 뭔가 달라지기를 기대할 뿐이다.
뭔가 다른 모습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까? 두루뭉술한 반성은 필요하지 않다. 20대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얻고 국회답게 기능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실천의지를 보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특권을 내려놓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고유의 임무인 입법과 예산심의활동을 제대로 하기 위한 방안도 내놓고 제도화해야 한다. 혹자는 20대 국회가 최악의 국회가 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미리 내놓기도 했다. 부디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한다. 국민이 너무 힘들고 고생스럽기 때문이다.
국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방안은 이미 다 나와 있다. 그 동안 실천의지가 약했을 뿐이다. 신뢰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가장 신뢰도가 낮으면서도, 엄청난 권한을 가진 국회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사회적 자본의 확충에 기여하는 20대 국회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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