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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가격에도 상대성 이론이 작용한다. 어떤 제품은 단돈 100원만 올라도 크게 느껴지는 반면 다른 어떤 제품은 100만원이 올라도 크게 실감을 못 하기도 한다. 재화가 가진 특성에 따른 차이다. 오랜 기간 소비자 머릿속에 형성된 주요 제품군별 가격 기준선에 따른 비교 판단 영향도 있다.
대개 소비자 물가는 매년 오른다. 해당 국가 경제성장률이 플러스(+)인 한 자연스러운 인플레이션이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식음료를 중심으로 한 먹거리 물가가 특히 올랐다고 체감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각종 원·부재료 상승과 최저임금 및 임대료 등 인상 요인으로 식료품 가격이 유독 집중적으로 오른 탓이다.
새해 들어서도 식음료 가격 도미노 오름세가 이어지며 최근 1년 사이 가격이 오르지 않은 제품이 없다고 할 정도다. 4100원이면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었던 카페 아메리카노는 4500원이 됐고, 퇴근 후 고단함을 달래주는 소주는 1280원에서 1380원(대형마트 기준)으로 100원 올랐다. 수년간 편의점에서 4캔에 1만원이던 맥주도 이제는 1만1000원이 대세가 됐다. 서민 음식이자 어른들의 안주이자 아이들의 간식인 라면과 과자 등 스낵류도 수백원씩 올랐다.
어떻게 보면 잔돈 수준인 100~1000원 정도 인상이지만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과 인상 체감은 크다. 원래 가격이 낮아 오름폭(%)이 상대적으로 크게 느껴지는 탓도 있지만, 먹거리는 생계를 위해 일상에서 자주 구매하고 소비하는 FMCG(fast-moving consumer goods·일용소비재)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당 100원 인상이라도 매일 구매해야 하는 품목이라면 3만6500원의 추가 지출이 생기게 된다. 또 소비자들이 자주 사 먹는 제품군은 머릿속에 ‘과자·라면·음료수는 1000원, 맥주는 4캔에 1만원, 치킨은 1만7000원’ 등의 기준선이 형성되는데 이를 깨뜨리는 가격 인상에 대한 거부감과 인지 부조화가 상대적으로 크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반면 같은 FMCG 제품군이더라도 패션 등 의(衣) 영역은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들의 인지도와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예를 들어 어떤 재킷이 22만원하다가 어느 날 24만원으로 올라도 소비자들은 잘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식료품만큼 자주 소비하는 품목이 아닌 이유도 있지만, 같은 제품군이더라도 브랜드에 따른 가격 차이가 천차만별인 탓에 소비자들 머릿속에 ‘이건 얼마’라는 가격 기준선이 모호한 영향도 크다. 예를 든 재킷의 경우 실제 저렴하게는 몇 만원부터 비싸게는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패션 소비는 음식보다 개인의 취향이 더 적극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시즌마다 신상품 출시로 값이 올라도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이 덜하다는 분석이다.
통상 저관여(구매 전 정보탐색 과정이 짧은) 제품으로 분류하는 FMCG보다, 자동차와 가전제품 등 가격을 더 중시하는 고관여 제품군의 가격 인상에 대한 저항이 덜한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가령 수년 전에 2000만원에 팔리던 중형차가 매년 연식 변경에 따른 신차 효과와 함께 100만원씩 올라 현재 2300만원이 됐다고 해도 소비자들은 크게 체감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원체 한 번에 목돈이 들어가는 고가품인데다 일반적인 경우 구매 주기도 몇 년에 한 번꼴로 길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수만원, 수십만원 저렴하게 구매하면 싸게 잘 샀다는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때론 장바구니 물가 100원 인상이 100만원보다 더 크고 현실적으로 무겁게 와닿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