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손자로, 이건희 현 회장의 조카이자 고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의 차남인 이씨의 자살 소식은 세간에 적잖은 충격을 줬다. 물론 가족들이 받았을 충격이 가장 컸을 터다. `재벌가 3세`라는 측면에서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한 배경을 두고 여러 추측들이 난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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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시신이 처음 안치된 곳은 서울 한남동 순천향대학병원. 오전 11시부터 밤 8시가 다 되도록 사람들의 발길은 뜸했다. 고인의 가족은 물론, 집안사람인 삼성家(삼성, CJ, 신세계)의 친인척은 찾아볼 수 없었다. 너무 조용한 나머지 병원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다가와 "대체 누가 돌아가셨기에 취재진까지 왔느냐"고 되레 물을 정도였다.
다만 자신을 "예전에 `사장님` 모시고 같이 일하던 부하직원"이라고 소개한 일부 측근들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뒤처리를 맡았다. 이들은 자신이 삼성가와는 무관한 사람이라고 밝혔다. 한 측근은 "고인께서 마지막 가시는 길인데 우리가 지켜드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의리를 지키기 위해 왔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어 그는 고인의 좋은 모습을 많이 기사화해달라며 기자에게 열심히 설명하기도 했다.
삼성家의 침묵과 무반응은 하루종일 이어졌다. 고인의 시신이 이송된 서울 일원동 삼성의료원. 자정이 넘도록 빈소는 마련되지 않았다. 의료원측에서는 "유가족들이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 같다. 언제쯤 빈소가 차려질 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은 19일 아침까지도 계속됐다.
유족은 물론 삼촌과 고모, 사촌측에서도 이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외부와의 접촉을 철저히 꺼렸다. 사건 발생후 사인(死因)에 대한 경찰 조사와 검찰의 최종 확인이 마무리되기까지 시간이 걸린 탓도 있겠지만, 가족과 친지들의 침묵속에서 고인은 조문객은 커녕 빈소도 없이 만 하루를 보냈다.
결국 유족들은 빈소를 따로 마련하지 않음으로써 조문객을 받지 않기로 한 것으로 19일 오전 확인됐다.
장례식은 그동안의 허물 여부와 상관없이 망자와 생자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자리지만, 이 재벌가 3세에게는 끝내 `장삼이사들이 누릴 수 있는 평범한 호사`마저 허용되지 않았다.
삼성의료원에서 만난 한 시민은 "너무 돈많은 집안에서 태어나도 문제인 것 같다. 적게 벌더라도 남 눈치 안 보고, 가족들과 화목하게 마음편히 살다 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고 말했다. 평소라면 그냥 흘려들었을 이야기가, 이번 현장을 지켜보면서는 새삼스레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