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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美 증시로 떠날 동안…무늬만 '차등의결권' 분주한 韓

김호준 기자I 2021.02.16 05:00:15

정부, ‘비상장 벤처기업’에 차등의결권 부여 검토
창업주에 1회 발행 허용…상장 시 보통주 전환 등 조건 ‘깐깐’
감사위원 선임, 이익배당 등 주요 사안에는 행사 제한
국내 360만개 중소벤처기업 중 가능한 곳 1%도 못미쳐
“조건 지나치게 까다로워…법보다 기업 자율에 맡겨야”

[이데일리 김호준 기자] ‘유통 공룡’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 배경에 ‘차등의결권’이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우리나라 차등의결권 도입에도 관심이 쏠린다. 차등의결권은 창업주나 최고경영자(CEO)가 가진 주식에 보통주보다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정부는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1주당 10개 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지만,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운데다가 벤처기업인증이 없는 혁신형 중소기업이나 코넥스 상장사는 제외돼 ‘무늬만 차등의결권’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내 온라인쇼핑몰 쿠팡이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다. 쿠팡은 12일(현지시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를 통해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을 위한 신고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쿠팡 본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4일 쿠팡의 미국 뉴욕 증시 상장과 관련 “그간 정부는 일반지주회사의 벤처캐피탈(CVC) 보유 제한적 허용과 복수의결권 도입 추진 등을 통해 벤처기업 성장을 뒷받침해왔다”며 “앞으로도 정부는 창업 생태계 강화을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정부가 추진 중인 차등의결권 도입 방안을 살펴보면 실효성에 의문이 남는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살펴보면, 일정 규모 이상 투자 유치로 벤처기업 창업주가 발행주식 총수 기준으로 ‘100분의 30’ 미만 주식을 소유하게 되는 경우에만 주당 의결권을 최대 10개 부여하는 차등의결권주식을 발행할 수 있다. 증권시장에 상장할 경우 3년 이후 보통주로 전환해야 한다. 상장 후에도 차등의결권을 유지하는 미국, 중국, 인도, 홍콩 등 벤처강국과는 다른 점이다.

아울러 이사의 보수나 감사의 선임 및 해임, 이익배당 등 회사 주요 사안을 결의하는 경우에는 차등의결권주식을 갖고 있더라도 1개 의결권만 가지도록 했다.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에 편입된 경우 역시 보통주로 바꿔야 한다. ‘무늬만 차등의결권’이라는 비판이 업계 일각에서 나오는 이유다.

유니콘 육성 취지로 출범한 코넥스 상장사나 벤처기업인증이 없는 혁신형 강소기업이 차등의결권 적용 대상에서 빠진 것도 지적된다. 국내 약 360만개 중소기업 중 벤처기업인증을 받은 회사는 3만9000개 정도다. 차등의결권을 도입할 수 있는 기업은 전체 약 1%에 그친다는 뜻이다. 이 중 기업규모가 초기단계인 코넥스 상장사까지 제외하면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더욱 줄어든다.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는 법안이지만, 국회에서는 전혀 논의가 안되고 있다. 현재 정부안과 양경숙 민주당 의원·이영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들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쿠팡 사례에서 보듯 상장 후에도 창업자를 중심으로 성장을 목표로 하는 기업이 많다”며 “차등의결권에 대한 규정을 과도하게 법에 다 담기보다 대상기업을 확대하고 기업 자율에 맡기는 방향으로 시급히 입법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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