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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 절판돼도 좋으니 사회가 육아시스템 갖춰야"

조선일보 기자I 2010.01.08 10:39:00

50만부 스테디셀러 육아서 ''삐뽀삐뽀 119 소아과'' 하정훈씨
"처음엔 나도 육아가 공포 인터넷서 부모들 고민듣고 밤새가며 책 고쳐 쓰기도"

[조선일보 제공] 의사 하정훈(50) 씨가 쓴 '삐뽀삐뽀 119 소아과'는 부모들 사이에서 '육아의 정석(定石)' 쯤 되는 책이다. 1,000여 페이지에 정가 2만 9000원인 이 묵직한 책은 현재도 종합베스트셀러 30위권·실용분야에서는 부동의 1위를 지키는 초(超) 베스트셀러다. 책이 나온 지 10년, 누적 판매 부수 50만 부를 돌파했다.

"아직도 2~3개월마다 책을 찍고 있어요. 50만 부면 웬만한 집에는 한 권씩 있다는 계산이 나오더라고요. 최대 독자층이 60대였고 다음이 50대입니다. 맞벌이가 늘면서 손주들 키우는 할머니·할아버지가 많긴 많구나 싶어요."

그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 사당동에서 개원, 1990년대 초반부터 하이텔 등 인터넷 통신에 육아 칼럼을 써왔다.

'육아를 상담하는 남자 소아과 의사'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이후 스물네 곳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참고문헌 수천 권, 집필에 3년 걸린 이 책은 2000년 세상에 나오며 대중 육아서 시장을 열어젖혔다. '제2의 삐뽀삐뽀 119'를 꿈꾸며, 이후 비슷한 백과사전식 육아서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1만 부 넘기기도 힘든 채 대부분 조용히 사라졌다.

▲ 하정훈 씨는“정부는 보육시설 짓는 데만 돈을 들일 게 아니라 부모와 아이들에게 실제로 도움될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고 했다.

"시장 선점 효과 아닐까요? 저는 의학 지식을 상담하듯 구어체로 썼어요. 당시로써는 새로운 접근이었죠. 지금도 저녁 7시에 퇴근해 어떨 때는 밤을 새우면서 고쳐 씁니다.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어 부모들 고민도 듣고요. 사이트 운영에만 1년에 5000만 원 들어갑니다. 독자들은 냉정하잖아요. 10년 들인 공을 알아봐 주는가 봐요."

그에게도 육아는 공포였다. 같은 소아과 의사인 부인과 함께 30대에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매일 밥 먹이고 재우고 싸우느라 진이 빠졌다. 의대를 다닐 때만 해도 교육 과정에 '육아'가 없었고, 의사들이 부모 대상으로 쓴 육아서도 찾기 어려웠다. 젊은 부모들은 길을 잃고 헤맸고, 그 모습을 보던 미혼 남녀들은 출산을 미루었다.

"사실 소아과의 핵심 업무는 '육아'입니다. 선진국에서는 의사가 20~30분씩 부모에게 육아 상담을 해줘요. 의사의 코치 아래, 부모는 아이들이 생후 8개월 되기 전에 수면·식사·버릇 이 세 가지 교육을 시킵니다. 그것만 해결돼도 이후론 굉장히 쉽고 재미있거든요."

그를 찾아오는 부모 중 상당수는 직접 책을 들고 와 "왜 책에서처럼 자상하게 설명해주지 않느냐"며 불만을 말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의대에서 육아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아요. 3분 진료나 30분 진료나 돈은 똑같이 받는데, 의사들이 힘들여 얘기해줄 필요를 못 느끼죠. 수십 명 환자가 줄 선 유능한 의사일수록 더 그래요. 그래서 책을 썼습니다. 병원과 의사가 해결 못하는 게 현실이니까 부모들 스스로 배워 나가라고요."

그의 목표는 '100만부 돌파'가 아닌 '절판'이다. 육아는 나라가 앞장서야 하기 때문이란다. "보육시설을 늘린다고 저출산이 해결되진 않아요. 부모들이 3만원이나 들여 내 책을 사보지 않아도 될 만큼 체계적인 육아 교육 시스템이 마련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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