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은행들의 이익구조는 10년전, 아니 그 이전과 다를 바 없다. 독점적 라이선스를 바탕으로 단순히 예금과 대출을 중개하는 전당포식 이자장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모습이다. 혁신을 통한 고객관점의 신상품개발, 서비스의 선진화 등은 언감생심이다.
이 같은 이익구조에선 지난해와 같은 금리상승기는 은행에겐 기회다. 자산만 불리면 자연스럽게 이익을 낼 수 있게 된다. 시장금리가 올라갈때 예금이자는 천천히, 대출이자는 신속히 올리는 방식으로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를 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국내 은행의 예대금리차는 2016년 1.95%에서 2017년 2.03%로 확대됐다. 그 결과 순이자마진(NIM)은 0.08%포인트(2016년 1.55%→2017년 1.63%) 개선되면서 이자이익총량은 2조9000억원(2016년 34조4000억원→ 2017년 37조3000억원)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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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예대마진에 편중된 비즈니스 구조로는 수익창출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수익성 잣대인 총자산순이익률(ROA)과 자기자본순이익률(ROE)을 보면 극명히 드러난다.
금감원 분석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은행의 ROA와 ROE는 각각 0.48%, 6.0%. 전년과 비교하면 각각 0.37%포인트, 4.63%포인트 상승했다. 조선·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일정부분 마무리되면서 회계상 대손비용이 5조5000억원이나 줄어든 덕이다.
하지만 미국 상업은행을 따라잡기에는 요원하다. 미국 은행의 ROA와 ROE는 2017년말 현재 각각 0.96%, 8.53%. ROA는 미국 은행의 절반수준, ROE는 70%수준에 그친다. 예컨대 자본 100억원을 똑같이 굴려도 미국 은행은 8억5300만원, 국내 은행은 6억원을 벌었다는 얘기다.
결국 국내 은행들의 비즈니스모델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자이익은 지속적으로 유지 확대하되 수수료 수익 등 비이자이익을 크게 늘려 구조조적으로 비이자이익 부문의 비중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가증권 판매, 프로젝트 파이낸싱 기타 자문수수료 등 은행 운용능력에 따라선 충분히 (수수료 수익을) 늘릴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금융환경이다. 관치의 그늘에 짓눌린 규제환경에선 은행들이 자생력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일은 녹록지 않다. 은행들로선 당연히 수수료 수입보다 예대마진 확대에 주력하고 이를 위해 담보대출 위주의 영업관행에 몰두하게 마련이다.
A은행의 한 임원은 “요즘도 수수료 책정과정에선 전화나 각종 회의 등을 통해 간접적인 압박이 들어온다”며 “비이자이익 부문을 늘리려면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그에 따른 가격체계도 마련해야 하지만 당국의 개입이 지속되다보니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공학과 교수는 “수수료도 금융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가격”이라며 “당국이 인기영합적으로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은행들이 금융혁신을 통해 이익을 낼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규제압박을 피하기 위한 우회전략을 펼치기도 한다. B은행의 한 임원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일단 수수료를 면제하거나 낮게 책정하는 방식으로 고객 확보에 주력한 후 이들로부터 저원가성 예금이나 대출을 유치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 임금체계의 경직성도 은행의 자생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통상 비이자이익은 도매금융에서 나오는 법. 은행들이 구조조정에 참여하든 인수합병을 주선하든 일정부문 투자은행(IB)으로서의 역할을 할때 수수료 수입을 크게 늘릴 수 있다. 하지만 국내 금융현실에선 고급인력 확보부터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오정근 교수는 “도매금융부문에선 외부 전문인력이 필요하지만 호봉제 중심의 은행 임금체계로선 어림없다”고 말했다.
결국 관건은 관치의 타파다. 여기에 은행이 공적기관의 역할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부가서비스를 창출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를 위해선 정부, 은행, 고객 이해관계자들 모두 은행 서비스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수익자부담원칙’부터 확고히 정립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기관의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선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해야 한다”며 “독점적 체제하에서도 은행들이 좀 더 다양한 경쟁을 통해 자생적으로 수수료를 인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