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전시 모두 해외 유명 미술관의 소장 작품을 대량으로 확보해 전시를 진행한다는 점이 눈길을 끌며, 작가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주요 작품들이 전시에 포함되어 삶과 예술을 집중 조명하기에 관람객을 압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본고에서는 존재 자체가 장르가 된 동시대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 가격 속 숨겨진 미적 가치를 소개하고자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작가’로 불리는 데이비드 호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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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데이비드 호크니는 물이 주는 청량감에 주목해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생명력 있는 물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예술가의 자화상>은 1972년 5월에 제작되었으며, 호크니의 ‘수영장 시리즈’ 중 하나이다. 물속에는 하얀 수영복 차림에 평영을 하고 있는 남성과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분홍빛 재킷을 입은 남성이 서 있다. 서 있는 남성은 당시 호크니의 11살 연하의 애인이자 뮤즈였던 피터 슐레진저(Peter Schlesinger, 1948~)를 모델로 그린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고, 호크니의 또 다른 자아로 해석하기도 한다.
<예술가의 자화상>이 생존 작가의 작품 중 최고가인 이유는 다양하지만, 필자는 시선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물의 흐름과 인물을 통해 반사되는 빛이 전체적인 작품의 온도를 높이고, 동성애자의 사랑, 물질주의 욕망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잔잔하면서도 기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공간 속 두 인물의 시선과 배치를 통해 절묘하게 표현했다는 점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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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호크니는 일상의 단면을 섬세하고 위트있는 시각으로 풀어내어 감상자의 층을 넓히고, 세밀한 관찰력과 상상력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양식에 도전하며 저력을 발휘하는 작가이다. 60여 년의 작업 여정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이며,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사실적이고 서술적인 의미를 가진 기호로 작품을 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회화, 에칭, 드로잉, 판화, 포토콜라주, 무대디자인, 컴퓨터 복사물, 색상복사기, 팩스, 테크놀로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들을 활용하여 하나의 양식으로 규정할 수 없는 조형관을 구축한 데이비드 호크니는 작품세계의 진화를 거듭하며 미술사적으로도 높이 평가받는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생존 작가, 박서보
데이비드 호크니가 한창 작업에 매진하던 1960-70년대에 국내 미술계의 상황은 한국적 정체의식을 지키면서도 외래의 경향을 추종한 시기였다. 당대의 주류 언어는 ‘엥포르멜(Informel)’이라는 프랑스 이름의 소위 전위미술이었고, 1957년 창립한 현대미술가협회를 주축으로 순수한 형식이라기보다 체제개혁의 시각적 표상으로서 앵포르멜을 융합, 수용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로써 보수적 화단 나아가 구체제 전반에 대한 저항과 혁신의 의지를 구현하고 물아일체의 경험이 작업의 핵심이 되는 단색조 회화에 이르게 된다.
한국 추상미술의 기수로 박서보를 소개하는 이유는 국내외 미술시장의 단색화(모노크롬)계열을 대표하는 생존 작가일 뿐 아니라 프랑스 앵포르멜 미술가들이 정신적 근간으로 삼은 실존주의와 궤를 나란히 하며 단색화라는 한국적인 미적 기호를 만드는데 주요 동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김환기가 한국 추상미술의 길을 열었다면 박서보는 그 길 위에서 한국적 추상으로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단색화를 견인했다. 과거 김환기는 그에 대해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크게 기록될 작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스승의 눈에도 그는 될성부른 제자였던 것이다.
박서보는 ‘한국성(Korean-ness)’의 수호자였다. “민족적인 것은 정신의 구조로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그의 말처럼, 그에게 정체성은 정신에 있는 것이고 따라서 정신성의 추구는 정체성을 찾는 길이었다. 1950년대에 체제 비판적 성격을 담은 앵포르멜(informel) 운동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전기, 후기 묘법(描法, ecriture) 시리즈와 원색 묘법으로 예술세계의 외연을 확장하는 과정의 기저에는 늘 한국적 정체의식에 대한 일관된 고민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한국적 모더니즘의 담론적 기틀을 구축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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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보의 작품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한국적이면서도 모던한 미감에 있다. 백자나 분청사기의 표면을 연상시키는 <묘법>연작은 무위적인 반복행위를 통해 제작됨으로써 추상표현주의자들이 추구한 ‘행위’를 동반하면서도 한국 고유의 ‘정신성’을 강조한다. 특히 색채, 재료, 기법 등에서 작위성을 배제하고 단순, 소박한 상태를 지향하는 예술관은 동양적 예술관을 대변하는 구현물이 되기에 충분하다. 현재 박서보는 세계인들에게 ‘한국적 추상미술’ 즉 단색화의 대표주자라는 명성을 얻으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변화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화해도 추락한다.
변화를 추구하되 제대로 변화해야 한다.”
-박서보
데이비드 호크니와 박서보의 작품에 대한 미적 가치를 논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작품의 가격이다. 미술시장에서 형성되는 가격은 일차적으로 경매회사의 스페셜리스트에 의해 추정가가 만들어지지만 결국 응찰자 간의 치열한 경합을 통해 최종 가격이 형성된다는 점에서 일정 부분은 작품 가격이 가치를 대변한다. 그러나 단순히 비싸게 팔렸으니깐 좋은 작품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군맹무상(群盲撫象)’일 수 있다. 그들의 작품이 대중에게 선호되는 이유를 다각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다소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두 작가의 공통점은 부단한 노력에 있다. 예술의 존재와 의미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근간으로 예술 작업을 거의 매일 규칙적으로 반복하면서 새로운 예술 흐름을 수용하고 융합하며 변화를 일으켜 온 것이 그들을 아트 거장으로 성장시킨 것이다. 현재 90세를 바라보는 이들의 삶과 예술이 만들어 낸 장르가 포스트 단색화를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는 국내 미술시장에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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