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북한군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로 중상을 입은 당시 하재헌 육군 하사가 사고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하 하사는 DMZ 수색작전을 위해 통문을 열고 나가던 중 목함지뢰를 밟았다. 북한군이 군사분계선(MDL)을 몰래 넘어와 매설한 것이었다. 이 사고로 그는 오른쪽 다리 무릎 위와 왼쪽 다리 무릎 아래를 잘라내야 했다. 함께 수색작전에 나섰던 김정원 하사 역시 목함지뢰의 폭발로 오른쪽 발목을 절단했다. 지뢰가 얼마나 비인간적 살상무기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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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 지역은 말 그대로 ‘지뢰밭’이다. 남북한 군이 6·25 전쟁 이후 첨예하게 대치하면서 지상에 뿌리거나 땅속에 매설한 결과다. 경기도 연천부터 강원도 철원·화천·양구·인제 지역 비무장지대(DMZ) 일원을 돌아다니며 가장 흔하게 본 것 중 하나가 지뢰 경고 표식이었다. ‘지뢰’라고 쓰인 빨간 표지판과 철조망은 민간인통제선(민통선)을 지나면서부터 DMZ에 이르는 곳곳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이중 사각형 표지판은 지뢰를 매설한 것으로 확인된 지뢰지대 표시다. 역삼각형 표시는 지뢰 유무가 확인되지 않은 미확인 지뢰지대임을 뜻한다.
우리 군이 매설한 지뢰는 M-14 및 M-16 대인지뢰와 M-15 대전차 지뢰다. 국방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뢰지대는 총 1290여개소다. 면적은 약 112㎢로 안양시의 두 배 규모다. 이중 확인된 지뢰지대는 1070여 개소 약 18㎢ 정도다. 미확인 지뢰지대가 220여 개소 약 94㎢나 된다. 확인된 지뢰는 DMZ 내부 493개소에 40여만발, 민간인통제지역 232개소에 44만여 발이다. 미확인 지뢰까지 포함하면 100만여발 이상이 매설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民·軍 지뢰 피해 잇따라…지뢰 모두 제거하는데 489년
문제는 지뢰에 의한 인명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호우나 산사태로 인한 지뢰 유실로 군사지역을 벗어난 곳에서까지 지뢰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2016년 강원도 양구지역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농경활동 중 대인지뢰를 밟아 부상을 입었다. 또 화천에서 경지 정리 작업을 하던 민간 덤프트럭이 대전차 지뢰를 밟아 폭발한 경우도 있었다. 지뢰금지국제운동(ICBL)의 한국지부인 ‘평화나눔회’에 따르면 전국에 민간인 지뢰피해자는 사망 230여명, 부상 360여명 등 590여명에 달한다. 이중 대부분이 강원도·경기도·인천광역시의 접적지역 주민들이었다. 분단 이후 전체 민간인 피해자는 1000여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지뢰는 사람 뿐 아니라 생태계도 위협하고 있다. 강원도 인제 군부대에서 만난 한 장교는 “야간 DMZ 매복 작전 중 동물들의 지뢰밟는 소리에 깜짝깜짝 놀란다”면서 “다리 한쪽 없는 고라니 등 부상을 입은 야생동물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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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내에는 북한군 지뢰도 수두룩하다. 북한군 대인지뢰는 목함(PMD-57)·수지재(PMN)·강구(BBM-82) 지뢰와 ATM-72·ALM-82 대전차 지뢰 등으로 알려져있다. 이 역시 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휴대용 장비로 탐지가 어렵다. 목재와 플라스틱 등 비금속 지뢰이기 때문이다.
◇獨과 사정 달라…DMZ 일대 지뢰, 한꺼번에 제거 불가능
한반도 평화 분위기 속에 남북한 사이의 DMZ도 독일의 옛 접적지역인 ‘그뤼네스 반트’(Grunes Band·녹색띠)와 같은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희망이 싹트고 있다. 그뤼네스 반트는 독일 분단 시절 동독과 서독 경계 지점에 있던 1393km 길이의 DMZ다. 현재는 생태·역사교육과 관광의 장으로 변모했다.
과거 이 곳에도 130만개의 지뢰가 매설돼 있었다. 독일은 자유로운 왕래의 걸림돌인 이 지뢰를 통일 이전에 제거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설계도면을 기초로 지뢰를 매설했기 때문에 이를 회수하는 것도 비교적 쉬었다. 특히 퇴역 장병 등 지뢰 설치자들을 수소문해 이른바 ‘인간지도’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기존 설계도면에 없는 지뢰 위치까지 대부분 파악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사정은 다르다. 우리 군 역시 지뢰지도가 있긴 하지만 무차별적으로 살포한 미확인 지뢰가 너무 많다. 지뢰를 제거하려면 DMZ 생태계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지뢰는 DMZ의 평화적 이용 문제의 딜레마다. 군 관계자는 “지난 2000년 남북한 경의선 철도와 도로 건설 과정에서 남쪽 지역에서만 3만6000여 발의 지뢰를 걷어냈다”면서 “DMZ 일원의 지뢰를 한꺼번에 제거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남북 간 협의에 따라 대상 구역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없애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