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허가 판자촌 거주민들이 갈 곳이 없어 주거 환경이 열악한 판자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정 기준을 만족한 거주민들은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만 그렇지 못한 거주민들은 아무런 대책이 없어 판자촌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판자촌 거주민 이주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이라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판자촌 개발을 위해선 이들을 강제로 쫓아낼 수밖에 없어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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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와 각 자치구에 따르면 서울의 판자촌은 총 10곳으로 판잣집·비닐하우스 3200여호, 1만여명 정도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의 판잣촌은 대부분 1960~70년대 산업화에 따른 이농현상으로 매년 50만~70만명의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면서 도시빈민촌으로 형성됐다. 이후로 주택 개량 사업 등으로 판자촌 수가 많이 줄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갈 곳이 없는 도시빈민들은 판자촌에서 살고 있다. 게다가 과거 판자촌 거주민에 대한 보상 대책이 시행되면서 보상을 노린 사람들도 일부 판자촌으로 유입됐다.
하지만 현재는 판자촌에 살고 있다고 해서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 못한다. 다만 일부 자격 요건을 갖춘 거주민에 한해 장기전세주택이나 재개발 임대주택 등 임대주택 입주권을 받고 있다. 자격 요건은 1989년 1월 24일 이전부터 판자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이후에 판자촌으로 흘러들어온 사람은 아무런 이주 대책이 없다.
서울 자치구 중 판자촌 관리에 가장 적극적인 강남구에는 달터마을·수정마을·재건마을·구룡마을 등 4곳의 판자촌이 있다. 이중 구룡마을은 개발이 진행되면서 보상 문제가 정리됐다. 나머지 3곳은 강남구가 나서 이주를 권유하고 있지만 실적이 지지부진하다. 이유는 판자촌을 떠나서 살 곳이 없어서다. 이 3곳에 있는 판잣집은 총 319가구다. 그나마 이주를 하는 사람들은 임대주택 입주권을 받은 이들이다. 319가구 중 1989년 이전 거주민은 186가구이고 나머지 133가구는 1989년 이후에 들어온 거주민이다.
◇지원 기준 2005년으로 바꾸면 거주민 90% 이상 수혜
이에 강남구는 관련법을 관장하는 국토교통부와 판자촌 거주민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서울시에 지원 대상 기준을 현행 1989년 1월 24일에서 2005년 1월 24일로 완화해 줄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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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관계자는 “무허가 건물에서 사는 것 자체가 불법인데 이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이를 완화할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고, 서울시 관계자는 “국토부가 만든 기준에 따라 지원 대상을 정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더욱 큰 문제는 판자촌 개발을 위해선 1989년 이후 거주민을 강제로 쫓아낼 수밖에 없다고 물리적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는 개발 과정에서 강제 철거를 하지 않겠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방침과도 정면으로 위배되는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고 판자촌을 이대로 방치해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희현 강남구 도시선진화담당관은 “인근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판자촌 거주민들이 인간적인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판자촌 이주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강제 철거 방식의 폭력적인 방법인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거주민을 이주시킬 수 있도록 국토부와 서울시가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