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면 싸게 살 수 있대"…다시 북적이는 명동 [르포]

김명상 기자I 2025.01.08 06:00:00

연말연시 활기 되찾은 서울 명동거리
의류·화장품 매장 외국인으로 북새통
환전액 전보다 늘면서 소비여력 커져
방한 외래 관광객 소비 규모 늘어날 듯
내국인 해외여행 지출 규모 감소 전망
'만성적자' 관광수지 적자 폭 줄 수도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비는 서울 명동거리 (사진=김명상 기자)
[이데일리 김명상·강경록 기자] “쇼핑을 하러 오는 고객 10명 중 9명이 외국인 관광객이에요. 지난달 매출이 전달에 비해 2배는 늘어난 것 같아요.”

지난 7일 오후 찾은 서울 명동. 코로나19 사태 이후 활기를 찾았다가 지난달 갑작스런 비상계엄 사태로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줄었던 명동이 다시금 활기를 되찾고 있다. 거리에는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외국인 관광객과 이들의 눈길과 발길을 잡으려는 호객꾼들로 북적였다. 거리 곳곳 닭꼬치와 호떡 등을 파는 노점에선 상인들이 익숙한 듯 각종 외국어로 말을 건네고 외국인 관광객들은 옹기종기 모여 한국의 스트릿 푸드로 배를 채우며 서울 도심에서의 겨울여행을 만끽했다. 명동에서 군밤, 떡꼬치, 핫도그 등을 파는 한 노점 상인은 “중국인이 여전히 많지만, 최근엔 동남아 관광객도 확실히 늘었다”며 “특히 대만, 홍콩, 싱가포르 관광객은 이전보다 씀씀이가 훨씬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다변화한 방한 외래 관광시장

명동 노점에서 길거리 음식을 즐기는 외국인들 (사진=김명상 기자)
최근 명동 상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외국인 관광객의 다변화다. 코로나19 팬데믹 전까지 대부분 중국인 관광객으로 가득하던 거리 풍경은 현재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등 동남아와 미주, 유럽 등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로 바뀌었다.

한국관광데이랩에 따르면 2019년 전체 외국인 관광객의 34.5%를 차지했던 중국인 비중은 지난해 10월에는 24.5%, 11월에는 21.9%로 감소했다. 반면 11월 방한 동남아 주요국(태국·말레이시아·베트남·인도네시아·싱가포르) 관광객 비중은 29.5%, 일본은 25.1%, 북중미(미국·캐나다·멕시코)는 10%로 증가했다. 올해 1∼11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전년 동기보다 51.1% 늘어난 1510만명으로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의 94% 수준까지 회복됐다.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찾는 올리브영 명동점 (사진=김명상 기자)
명동의 한 화장품 매장 직원은 “이전보다 외국인 손님의 국적이 다양해지면서 일일이 응대하기가 힘이 부칠 정도”라며 “직원들끼지 동남어 현지어를 공부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농담을 주고 받기도 한다”고 했다.

원·달러 강세의 영향으로 외국인 관광객의 씀씀이도 이전보다 커지고 있다. 특히 위안화, 엔화와 같이 직접 원화 환전이 가능한 중국, 일본 관광객 외에 미주, 동남아 관광객의 소비 규모가 이전보다 커졌다는 게 대다수 명동 상인들의 설명이다.

7일 오후 명동 거리에서 만난 미국인 브렌다 오슬리(여·32) 씨는 “올리브영의 경우 미국에서 60달러 이상 주문하면 배송비 없이 주문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 직접 사는 것이 더 싸다”며 “한국에 온 김에 지인들이 부탁한 제품 외에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할 것까지 모두 사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환율 덕에 씀씀이 커진 동남아 관광객들

‘킹달러’ 효과로 소비 여력이 커진 건 동남아 관광객도 마찬가지다. 동남아 관광객은 현지에서 한국 내 환전이 쉽지 않아 여행 중 쓸 비용을 현지에서 달러로 바꿔 오는 게 일반적이다.

필리핀에서 온 마이코 에르난데스(남·25) 씨는 “미국 달러를 환전했더니 이전보다 더 많은 원화를 받았다”면서 “계획했던 예산보다 여유가 생겨 쇼핑을 더 한 덕분에 아예 큰 캐리어를 하나 더 샀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 가족여행을 왔다고 소개한 데릴 웡(남·34) 씨는 “이틀 전 롯데월드에 갔다가 쇼핑몰에서 한 차례 쇼핑을 했는데 오늘도 화장품, 옷가지 등을 추가로 더 샀다”며 “내일 강원도로 스키를 타러 다녀온 후에는 삼성동이나 여의도 쇼핑몰을 가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관광수지 추이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관광 업계와 전문가들은 고환율 영향으로 방한 외국인 관광객의 씀씀이가 커지면서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관광수지 적자 폭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10월 국제수지(잠정) 통계에 따르면 여행수지 적자폭은 4억 8000만 달러로 9월(-9억 4000만달러)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달러 강세 기조가 이어지면 방한 외국인 관광객의 씀씀이는 커지고 반대로 내국인의 해외여행 소비가 줄어들면서 관광수지 적자폭은 더 축소될 수 있다. 원·달러 환율 고공행진이 시작된 지난해 11월부터 12월까지 그랜드코리아레저(GKL), 파라다이스, 제주 드림카지노 등 외국인 전용 카지노는 일제히 매출이 평균 10%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이용객 수 감소에도 실적이 올라간 것은 직간접적으로 고환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서대철 야놀자리서치 선임연구원은 “전체 방한객의 63%를 차지하는 중국, 일본, 대만, 미국 관광객의 경우 원화 약세가 높은 방한 수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정치적 불확실성 등 대내외적 요인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장단기 전략을 짜야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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