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시대를 버텨낸 '위대한 모정'

김용운 기자I 2015.02.06 06:42:00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케테 콜비츠''전
독일 민중예술의 원조…판화·조각 56점
자녀 끌어안은 어머니 ''피에타'' 등
흑백 대비 구조·극적인 표정 눈길
4월19일까지

케테 콜비츠의 1923년 석판화 ‘살아남은 자들’(사진=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퀭한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배어 있다. 흑백의 명백한 대비는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인 듯 섬뜩하면서도 눈을 떼기 어렵다. 단순하면서도 극적인 표정. 삶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대신 고통으로 점철된 표정들이 선연하다. 감탄 대신 각성을, 공허한 위로보단 불의에 대한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독일의 저항작가, 민중예술의 어머니로 불리는 케테 콜비츠(1867~1945)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판화 55점을 비롯해 대표적인 조각상인 ‘피에타’까지 총 56점을 전시한다. 세계 미술사의 한 흐름을 만들어낸 콜비츠의 주요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4월 19일까지 열리는 전시에는 1921년부터 1922년까지 선보인 ‘전쟁’ 연작을 비롯해 네 번째 판화 연작인 ‘프롤레타리아’(1925), 마지막 연작인 ‘죽음’(1934~1937) 등 후기 작품이 나왔다. 콜비츠의 이름을 독일 미술계에 알린 ‘직조공 봉기’(1893~1897)와 ‘농민전쟁’(1901~1908) 등 후반기 단순성을 강조했던 목판화 연작과는 대비되는 에칭 연작 등도 관람객을 맞는다. 평생 275점의 판화를 제작한 콜비츠의 작품 중 일본의 오키나와 사키마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으로 전시를 꾸렸다. 콜비츠의 작품이 한국에 전시되기까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주도로 기금을 조성한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의 역할이 컸다.

케테 콜비츠의 ‘농민전쟁’ 연작 중 첫 번째 작품인 ‘밭가는 사람’. 콜비츠가 1906년 에칭으로 선보인 작품이다(사진=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콜비츠의 작품에선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인다. 군부독재와 맞서 싸웠던 한국의 1980년대 대학가. 교정에 나붙었던 숱한 걸개그림은 대부분 민중예술의 전위에 섰던 예술가, 가령 오윤, 임옥상, 이철수 등의 목판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굵직하고 투박한 선과 극적인 표정들이 특징인 민중예술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 아니라 피를 뜨겁게 하는 선동의 목적이 강했다.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침묵하는 이들을 자극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콜비츠는 한국의 민중예술뿐만 아니라 그에 앞서 1920~1930년대 중국의 대문호 루신을 비롯해 중국 신목판화 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미술이 유한계급의 미적 만족을 위한 장식품이 아니라 현실을 고발하고 구조적인 불의에 고통받는 평범한 이들에게 심미적인 위로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작품으로 증명해서다.

작품 대부분은 삶의 참상이 가득하다. 그러나 잔혹하고 잔인한 감정보다 연민이 보인다. 거친 판화의 선들을 한 번 더 더듬어보면 작가의 심연 안에 자리 잡은 온기까지 느낄 수 있다. 살육의 광기가 세상을 뒤덮었던 1차대전과 2차대전. 브레히트가 말한 ‘서정시 쓰기 힘든 시대’를 온몸으로 겪은 작가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목판 위에 그 시대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의 모습을 새기고 새겼다. 이를 통해 시대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역사의 비극을 다시 반복하는 어리석음을 경고한다.

케테 콜비츠가 1910년 제작한 판화 ‘이마에 손을 얹은 자화상’(사진=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콜비츠는 1차대전으로 둘째 아들을 잃었고 2차대전으로 손자를 잃었다. 시대나 개인이나 모두 불행했다. 그럼에도 ‘아낌없이 주는 어머니’(1926)나 ‘부모와 아이들’(1931)은 폭력이 난무하는 암담한 세상에서 무엇에 희망을 걸고 견디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콜비츠의 판화를 다 둘러본 후 가로와 세로 길이가 40㎝ 정도 되는 ‘피에타’ 상 앞에 서면 시대의 억압과 개인의 고통을 인내한 여인의 깊고 깊은 마음과 마치 교감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전시는 무료. 작품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 팸플릿도 무료로 제공한다. 아울러 ‘콜비츠와 놀기’와 같은 어린이 아트워크숍과 ‘콜비츠의 삶과 예술’ 등 전시 연계프로그램도 풍성하다. 02-2124-8800.

케테 콜비츠가 로마 성베드로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동명 작품을 재해석해 만든 ‘피에타’(사진=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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