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사이언스(길리어드)가 개발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치료제 ‘빅타비(성분명 빅테그라비르·엠트리시타빈·테노포비르 알라페나미드)’다. 2020년 기준 글로벌 시장 매출액이 72억6000만 달러(당시 한화 약 8조5668억원)로 전체 의약품 중 매출 9위를 기록한 블록버스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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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V는 현대판 흑사병이라고 불리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에이즈)를 유발하는 바이러스다. 이는 우리 몸속 면역세포 중 T세포를 파괴해 면역력을 크게 저하시키며, 각종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감염될 수 있다. 1991년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인 퀸의 메인 보컬이던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하면서 세계적으로 에이즈 퇴치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질환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HIV를 발견해 200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뤼크 몽타니에 전 프랑스 파리대 명예교수가 별세했다. 그는 1983년 에이즈에 걸린 33세 남성의 림프절에서 당시 보고된 바 없는 새로운 레트로바이러스를 발견했다. 레트로바이러스란 자신의 유전물질인 리보핵산(RNA)을 숙주세포의 DNA에 끼워 넣는 방식으로 증식하는 바이러스다. 몽타니에 교수는 림프절 질환과 관련한 바이러스라는 의미로 이를 LAV라 명명해 같은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듬해인 1984년 당시 로버트 갈로 미국립보건원(NIH) 연구원도 이와 같은 바이러스를 발견해 ‘제3형 사람 T세포친화바이러스(HTLV-Ⅲ)’라 명명했다. 그는 레트로바이러스와 에이즈의 연관성을 확인한 4편의 논문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같이 내놓았다. 이후 몽타니에 교수와 갈로 연구원 사이에서 이 바이러스를 최초발견한 사람의 지위를 두고 소송이 벌어졌다. 1986년 미국 바이러스 학자 조나스 소크에 의해 소송이 극적으로 합의되며 신종 레트로바이러스의 명칭은 HIV로 공표됐다.
현재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에이즈 치료제는 기본적으로 여러 항바이러스제 성분을 병용요법으로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를 흔히 ‘고활성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HAART)’또는 칵테일 요법이라 부르며, 확률적으로 HIV가 모든 항바이러스제에 동시에 내성을 갖기 어려운 특징을 이용한 것이다.
오늘 소개할 길리어드의 빅타비 역시 세 가지 성분의 조합으로 이뤄졌다. 하루 한 번씩 경구용으로 복용하는 빅타비 1정에는 빅테그라비르 50mg과 엠트리시타빈 200mg, 테노포비르 알라페나미드 25mg 등이 포함돼 있다.
먼저 길리어드가 2016년에 개발한 빅테그라비르는 바이러스의 RNA를 숙주세포의 DNA에 끼워 넣는 통합효소 ‘인테그레이스’를 억제하는 물질의 일종이다. 회사 측이 2004년에 개발한 엠트리시타빈은 바이러스의 역전사효소 억제제로 B형 간염 바이러스를 보유한 사람에게는 심각한 간 손상을 일으킬 수 있어 사용 시 주의가 필요한 물질이다. 테노포비르 알라페나미드는 역시 역전사효소 억제제이며, 림프구 내로 흡수된 HIV에 특히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길리어드는 엠트리시타빈과 테노포비르 알라페나미드 등 두 가지 성분을 갖는 에이즈 치료제 ‘데스코비’에 대한 미국 식품의약국(FDA) 판매 승인과 예방 적응증 확대를 각각 2016년과 2019년에 획득한 바 있다.
이후 에이즈에 대항하는 더 확실한 HAART를 구사하기 위해 길리어드가 데스코비에 빅테그라비르를 더해 새롭게 구성한 약물이 바로 빅타비다. 회사 측에 따르면 빅타비는 두 개의 링이 결합한 독특한 화학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테그레이스와 강력하게 결합한다. 길리어드는 빅타비의 반감기가 약 17시간에 이르며 내성 장벽까지 매우 높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와 유럽의약품청(EMA)은 각각 2018년 2월과 6월에 빅타비에 대한 판매 승인을 허가했다. 이후 빅타비가 전 세계 시장에서 같은 분야 약물 중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9년 빅타비의 판매를 허가했다. 현재 빅타비와 영국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트리멕(성분명 아바카비르·돌루테그라비르·라미부딘)’이 국내 약 1000억원 규모의 에이즈치료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1일 1회 먹는 경구용 약물이다.
국내 신약 개발 기업 카이노스메드(284620)도 에이즈 치료제 후보물질에 대한 국내 임상 1상을 마쳤다. 이 후보물질은 손종찬 한국화학연구원 박사팀이 길리어드와 공동연구를 진행해 2008년에 발굴했다. 해당 물질을 2012년 카이노스메드가 기술이전했고 지난 2014년 중국 제약사 장수아이디에 후보물질에 대한 중국 판권을 이전했다. 이후 중국 내에서 임상 1~3상을 거쳐 지난해 6월 중국 국가약품감독관리국(NMPA)으로부터 판매허가를 받은 바 있다.
한편 최근 경구용 약물이 주름잡는 에이즈 치료제 시장에 주사형 약물이 등장하면서 환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2020년 12월 EMA는 GSK의 ‘보카브리아(성분명 카보테그라비르)’와 미국 얀센의 ‘레캄비스주사(성분명 릴피비린)’을 결합한 패키지 제품인 ‘카베누바’에 대한 판매를 승인했다. 카베누바는 1~2달 간격으로 한번 주사하는 약물이다. 지난해 1월 FDA도 카베누바에 대한 시판을 허가했다. 식약처도 지난 3일 이 약물을 판매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카베누바는 경구형 제제보다 투약 편의성이 높아 업계에서 향후 시장 변동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