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석이 시도한 ‘부캐의 세계’가 화제가 되면서 최근 다른 연예인들도 부캐 도전에 나서기 시작했다. 정범균은 유산슬의 이미테이션 가수인 유산균이라는 부캐를 만들었고, 개그맨 추대엽은 산에서만 살아 유행어를 모른다는 카피추라는 부캐로 인기를 끌고 있다. 김신영은 ‘둘째 이모 김다비’라는 부캐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박나래는 ‘안동 조씨 조지나’라는 부캐를 만들었다.
이 중에서 또 하나의 성공 부캐로 꼽히는 인물은 단연 김다비다. 벌써부터 ‘모두의 이모’로 불리며 일종의 캐릭터 놀이에 빠져든 김다비는 그간 김신영에게 부여된 고정된 이미지를 깨고 다양한 얼굴을 마음껏 꺼내놓고 있는 중이다. 캐릭터라는 가면이 주는 자유랄까.
최근 들어 방송가에 부캐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한 건 우리네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MBC ‘무한도전’으로 집단 캐릭터쇼의 시대를 풍미했던 김태호 PD가 유재석 1인을 중심으로 다양한 부캐를 확장시키는 ‘놀면 뭐하니?’로 돌아온 건 여러모로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 바뀌어가고 있는 현 시대의 변화를 포착한 면이 크다. 집단보다는 개인에 더 관심이 많아진 대중은 그 개인이 어디까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부캐란 그래서 ‘개인의 확장’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성장’이 아닌 ‘확장’이라는 점이다. 개인보다는 가족이나 회사 나아가 국가 같은 집단이 우선이었던 시대에 우리의 관심사는 성장이고 성공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자신을 성장시키고 성공시킬 수 있는 일이 삶의 중심축이었다. 그래서 본 캐릭터가 그 사람의 전부였고, 부캐는 부수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퇴직이라도 해서 명함이 사라지면 그 사람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
물론 부캐의 시대 이전에 연예인들에게는 ‘멀티 플레이어’의 시대가 있었다. 가수가 연기를 하고 연기자가 예능을 하는 그런 시대.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해 일의 영역 안에서 더 많은 성장과 성공을 위한 기회를 얻으려는 몸부림이었다. 하지만 부캐의 시대에는 일 바깥 취미와 취향의 영역에서 또 다른 삶의 즐거움을 얻으려는 노력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일 바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다 보니 프로 못지않은 능력을 갖게 되고 그것이 그 사람의 또 다른 삶의 성장을 가능하게도 한다는 점이다.
‘부캐의 세계’가 우리에게 속삭이는 건 지금껏 본 캐릭터의 틀에만 갇혀 있다 보니 스스로 제한했던 다양한 가능성들을 열어보라는 것이다. 일의 관점만이 아닌 놀이나 취미, 취향의 관점으로도 시선을 넓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캐의 세계’는 일만을 고집하고 성장과 성공만을 집착하다 놓쳐버린 과거를 극복해내는 대안적 라이프 스타일로 보여지는 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