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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꼬박꼬박 ‘국민 혈세’는 집행되고 있다. 정책기획위원회의 올해 예산(정부안 기준)은 39억5600만원에 달한다. 이 중 회의 예산은 4억6200만원, 사무국 예산은 34억9400만원이다. 재정개혁특위는 교수 회의수당, 광화문 사무실 임대료, 기획재정부 등 파견 공무원 인건비에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일 안 하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에 329억 펑펑
재정개혁특위는 ‘일 안 하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대표 사례다. 국민 여론을 투명하고 광범위하게 수렴하겠다며 출범한 위원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특위 위원은 “특위 회의에 안 간지 몇 달 됐다”며 “앞으로 뭘 논의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혈세 낭비 논란이 있는 위원회가 한두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데일리가 대통령 직속 위원회 19곳의 운영실적을 27일 분석한 결과, 위원회 13곳(68%)이 지난 3분기(7~9월)에 전체회의 성격의 본회의(이하 출석회의 기준)를 한 번도 열지 않았거나 1회 여는데 그쳤다. 이들 위원회의 실무를 주관하는 부처는 고용노동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행정안전부다.
하지만 이렇게 회의 실적이 부진해도 위원회에 예산 지원은 꼬박꼬박 이뤄졌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 13억1100만원, 국가지식재산위에는 20억9100만원, 북방경제협력위에는 28억5200만원 등이 올해 예산으로 편성됐다. 올해 3분기 기준으로 한 달에 한 번 본회의조차 열지 않은 위원회가 15곳에 달했다. 이 중 12곳에 올해 예산 329억1085만원이 편성됐다. 3곳에는 올해 예산 편성이 없었다.
수백억원이 예산이 투입되는 것은 위원회를 운영하는 경비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회의비만 수십억원에 달한다. 올해 북방경제협력위는 16억9860만원, 일자리위는 10억6500만원, 4차산업혁명위는 9억6420만원, 국가교육회의는 9억3660만원 등으로 위원회마다 억대 예산이 회의비로 편성됐다.
위원들이 수백명에 달해 회의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들 위원회에 소속돼 있는 위원은 545명(당연직+위촉직)이다. 위원들이 회의 참석 때마다 받는 수당은 수십만원 선이다. 이렇게 수백억을 삼킨 위원회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는 확인이 안 된다. 회의록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내용을 논의했고 어떤 결론을 내렸는지 알 수 없는 구조다.
◇회의 불참해도 페널티 없어…‘엇박자·옥상옥’ 지적도
허술하게 운영한 탓에 대통령 직속 위원회들이 내놓은 성과는 신통치 않다. ‘옥상옥’ 구조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부처와 정책 엇박자를 내기도 했다. 특히 국민 생활에 영향이 큰 세법 개정안을 놓고 위원회와 부처 간 입장이 충돌하기도 했다.
일례로 재정개혁특위는 지난 7월3일 종부세·임대소득 및 금융소득 과세 개편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사흘 뒤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특위 권고안을 뒤집는 세법 개편안을 발표했다.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겠다던 위원회 조직이 출범한 뒤 오히려 혼선만 자초한 꼴이 됐다.
이렇게 논란이 불거졌지만 후속 조치는 없는 상황이다. 위원 교체도 없다. 회의에 수개월간 불참해도 페널티도 없는 상황이다. 유령으로 전락한 위원회에 대한 개선이나 폐지 계획도 불분명하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각 부처에서 위원회 관리를 하고 있다”며 “폐지하려면 법이나 시행령을 개정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재정특위를 비롯해 대통령 직속 위원회들이 요란하게 출범했지만 성과는 부실한 ‘용두사미 위원회’가 됐다”며 “앞으로 성과 평가를 확실하게 해서 위원회 정비를 해야 한다. 정부가 민간에 체질개선·구조조정 필요성을 밝히기 앞서, 정부부터 구조개혁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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