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들 DMZ를 생태계의 ‘보고’(寶庫)라고 한다. 독특하고 다양한 생태계와 높은 생물종 다양성을 간직하고 있는 ‘보물’ 같은 곳이라는 의미다. 이중 강원도 화천과 양구 경계에 있는 ‘오작교’ 일대가 으뜸으로 꼽힌다. 오작교는 북측에서 흘러온 금성천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하천 위 다리다. 지난 1일 해당 군 부대 협조를 받아 오작교를 건넜다. 야생 동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곳이라는 일반전초(GOP) 소초장의 안내에 따라 철책 앞에서 동물들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이날 아침에도 산양이 두 번이나 왔다 갔다고 했다. 하지만 오감이 예민한 야생 동물들이 쉽게 모습을 드러낼리 만무했다. 1시간여 쯤 흘렀을까. 무작정 기다릴 수 없겠다는 생각에 철책을 따라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까마귀의 울음소리만 먼발치서 들려왔다. 새삼 ‘야생 다큐멘터리는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4~5시간 쯤 동물들을 찾아 헤매다 결국 허탕을 치고 발길을 돌렸다.
|
GOP에서 내려와 화천 ‘평화의댐’ 쪽으로 이동하던 도중 안내 장교가 소리치며 차를 멈춰 세웠다. 북한강을 따라 형성된 습지대에서 고라니 한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던 것이다. 먼거리였지만 갈색 등에 뿔이 없는 모습이 천상 고라니였다. 얼른 차에서 내려 셔터를 눌렀지만 너무 멀리있어 사진 촬영이 쉽지 않았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이쪽을 바라보던 고라니는 가까이 다가가자 이내 모습을 감췄다. 한국과 중국에서만 사는 고라니는 국제자연보존연맹(IUCN)이 멸종위기 가능성이 높은 생물종(취약)으로 지정한바 있다.
평화누리길을 따라 얼마쯤 가다 안내 장교가 또 차량을 급히 세웠다. 도로 바로 옆에 조성된 자전거길에 산양 한 마리가 산책을 하고 있었다. DMZ 일대가 야생 동물들의 놀이터라는 말을 실감했다. 산양은 천적을 피해 주로 동굴이나 기암절벽에 서식하지만 이날 먹이를 찾아 잠시 내려온듯했다. 산양은 철쭉잎과 잡초나 이끼를 먹고 산다. 머리 위에 난 두 개의 뿔과 쫑긋 서 있는 귀가 인상적이었다.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된 산양은 그 수가 많지 않아 지난 2012년 7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DMZ 일대에 사는 멧돼지들은 군 장병들의 친구다. ‘품바’라는 애칭까지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 ‘라이온킹’의 멧돼지 캐릭터 이름이다. 농작물 훼손의 주범이라는 ‘오명’덕에 환경부가 지정한 대표적인 유해야생동물이 됐지만 이곳의 멧돼지들은 온순하다. 병사들이 주는 잔반에 의존해 야생성을 포기해서다. 전방부대들은 잔반을 음식물 쓰레기장에 버리지 않고 멧돼지들의 먹이로 준다. 부대 입장에선 잔반 처리시설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멧돼지들은 먹이 걱정을 더는 공생 관계인 셈이다. 이날도 잔반을 풀자 멧돼지 가족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어 만찬을 즐겼다. 이 곳 멧돼지들은 군복에 익숙해져 장병들에게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DMZ 일원의 면적은 총 1557㎢(서울시 2.5배)로 전체 국토 면적의 1.6%에 불과하지만, 한반도 전체에 분포하고 있는 생물종 2만 4325종의 약 20%가 이 곳에 서식한다. 게다가 DMZ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새로운 종의 식물로 교체되는 이른바 천이(遷移)과정을 거쳐 6·25전쟁 전 논·밭이었던 곳이 습지로 변하는 생태적 복원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국립생태원이 지난 해 발간한 ‘DMZ 일원의 생물다양성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DMZ 일원에는 총 7개 분야 4873종의 야생 동·식물이 살고 있다. 이 중에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산양·사향노루·반달가슴곰·수달·붉은박쥐 등 포유류 5종과 흑고니·노랑부리백로·저어새 등 조류 9종을 비롯해 수원청개구리(양서류)·흰수마자(담수어류) 등 총 16종도 포함돼 있다. 특히 두루미와 사향노루 등 멸종위기 야생생물은 우리나라에서 DMZ 일원에서만 볼 수 있다.
취재에 동행한 원주지방환경청 관계자는 “DMZ는 한반도 자연생태계의 전형인 산림생태계와 연안의 습지생태계가 만나는 현장”이라면서 “백두대간과도 이어지는 생태·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