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기자의 천일藥화]'동·식물로 만든 의약품 원료' 원산지 표기 왜 안할까

천승현 기자I 2016.03.12 07:00:00

의약품은 원료의약품 원산지 비공개
업계 일부 "소비자 알권리 확보로 동식물 원료 공개 필요"
보건당국·"엄격한 심사 거쳐 허가..안전성·효능과 무관한 정보 공개로 혼선 우려

[이데일리 천승현 기자] 국내에서 만드는 의약품은 원료의약품의 수입 의존도가 높다. 지난 2014년 기준 원료의약품 수입 규모는 17억달러(약 2조원)로 국내 생산실적 2조1389억원으로 비슷하다.

국내에서 생산된 원료의약품 중 수출 물량(약 1조4400억원)을 제외하면 국내에서 사용된 원료의약품 중 수입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70%를 웃돈다는 계산이 나온다. 중국, 일본, 이탈리아, 인도 등의 수입 원료의약품이 많이 사용된다. 이중 저렴한 중국산과 인도산 원료의약품 사용 빈도가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그러나 식당에서 판매하는 음식이나 가공식품의 원료처럼 원료의약품의 원산지는 표기 의무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들은 자신이 먹는 의약품이 어느 나라 원료의약품을 사용했는지 알 수 없다.

의약품은 화학적 합성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원산지가 어딘지 여부는 중요한 정보가 아니라는 이유로 원산지 표기가 할 필요가 없다.

동물이나 식물을 원료로 만든 천연물 의약품도 원료의약품의 원산지를 공개하지 않는다.

동아에스티 ‘스티렌’은 중국산 쑥으로 원료의약품을 추출한다.
국내에서 개발된 천연물신약 중 가장 많이 팔리는 동아에스티(170900)의 위염약 ‘스티렌’은 중국에서 쑥을 사들여와 유효 성분을 추출해 만든다. 스티렌의 복제약 80여개 품목 모두 중국산 쑥을 사용하지만 이 정보는 의약품 포장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건일제약이 노르웨이산 정어리에서 ‘오메가-3’를 추출해 만든 ‘오마코’ 역시 환자들에게 이 정보는 알려주지 않는다.

같은 제품이라도 원산지가 다른 경우도 많다.

최근 국내 중소제약사 한국BMI는 ‘폴리데옥시리보뉴클레오티드나트륨’이라는 성분으로 만든 ‘하이디알주’를 허가받았다. 이 제품은 피부이식으로 인한 상처의 치료 및 조직 수복 목적으로 사용되는 약물이다. 흥미로운 것은 연어의 정소에서 유효성분을 추출해 원료를 만든다는 점이다. 한국BMI는 중국에서 원료의약품을 공급받는데 이 원료는 러시아 인근 북태평양 해역에서 포획한 연어로 만든다. 한화제약, 영진약품, 대한뉴팜 등도 한국BMI로부터 완제품을 공급받아 시중에 판매한다.

파마리서치프로덕트 ‘리쥬비넥스’는 이탈리아와 국내에서 잡힌 연어를 활용해 생산한다.
‘하이디알주’는 파마리서치프로덕트(214450)라는 국내 기업이 판매 중인 ‘리쥬비넥스주’의 복제약 제품이다. 그러나 리쥬비넥스는 복제약과는 달리 이탈리아와 우리나라 동해에서 잡은 연어를 활용해 각각 이탈리아와 국내에서 원료의약품을 만든다. 원료의 원산지를 따지자면 복제약 제품은 러시아 혹은 중국산, 오리지널 제품은 이탈리아산 또는 국내산이 되는 셈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소비자 알 권리 확보 차원에서 동물이나 식물을 사용한 원료의약품은 완제품 포장에 정보를 표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원산지 표시제는 농산물의 본격적인 수입 개방에 따라 외국의 값싼 농산물이 국산 농산물로 위장돼 판매되는 부정 유통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가공식품에 대한 원산지 표시제도는 농산물품질관리법을 근거로 1993년 6월부터 시행됐다.

건강기능식품도 일부 제품은 원산지를 표기한다. 인삼제품·홍삼제품·로얄젤리제품·식물추출물발효제품 등 원산지가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제품은 원료의 생산 지역을 포장 등에 표기하도록 규정됐다.

그러나 보건당국은 천연물 의약품이라도 원료의 원산지 표기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한다. 원산지가 제품의 질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정보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세계적으로도 원료의약품의 원산지 표기를 강제하는 나라는 없다.

식약처 관계자는 “의약품의 경우 엄격한 심사를 거쳐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제품만 허가한다. 원료의약품의 원산지에 따라 약효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안전성·유효성과 무관한 정보를 공개하면 소비자들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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