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호의 그림&스토리]<2>파란눈 이방인이 본 '액운 날리기'

오현주 기자I 2021.02.19 03:30:01

▲英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연 날리는 아이들'
일제강점기 韓 방문에서 엿본 '의지의 한국인'
연으로 근심 날린 남매, 광화문 풍선 든 가족…
모진 억압에도 의연한 한국인들 화폭에 담아

엘리자베스 키스의 ‘연 날리는 아이들’(1936·오른쪽). 석판화로 제작했다(49.5×36.5㎝). 키스 화풍의 특징인 부드러운 색감에 디테일한 묘사가 잘 드러나 있다. 키스가 서울·평양 등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그린 그림은 처음 대상을 만나 스케치를 하고, 숙소나 작업실에 돌아와 수채작업을 한 뒤 일본에서 판화작업을 하는 식. 같은 소재를 다른 기법으로 표현한 그림이 여럿인 건 이 작업방식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혹독한 세상살이에 그림이 무슨 대수냐고 했습니다. 쫓기는 일상에 미술이 무슨 소용이냐고 했습니다. 옛 그림이고 한국미술이라면 더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는 일을 돌아보면 말입니다. 치열하지 않은 순간이 어디 있었고, 위태롭지 않은 시대가 어디 있었습니까. 한국미술은 그 척박한 세월을 함께 견뎌온 지혜였고 부단히 곧추세운 용기였습니다. 옛 그림으로 세태를 읽고 나를 세우는 법을 일러주는 손태호 미술평론가가 이데일리와 함께 그 장면, 장면을 들여다봅니다. 조선부터 근현대까지 시공을 넘나들며, 시대와 호흡한 삶, 역사와 소통한 현장에서 풀어낼 ‘한국미술로 엿보는 세상이야기’ ‘한국미술로 비추는 사람이야기’입니다. 때론 따뜻한 위로로 때론 따가운 죽비로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을 아트인문학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편집자주>

[손태호 미술평론가] 농경사회였던 조선에서는 설날부터 정월대보름까지가 명절기간이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만큼은 일을 하지 않고 휴일로 보냈습니다. 요즘이라면 이런 황금연휴에 장거리 여행을 가거나 평소 하지 못했던 취미활동을 즐겼을 테지만 반세기 전만 해도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온 마을의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놀이를 즐겼던 것입니다. 남자들은 윷놀이, 여자들은 널뛰기 등을 했는데요. 이런 세시놀이가 마을사람들의 유대감을 높이고 이웃 간 정도 두텁게 했습니다.

어른들이 윷놀이와 널뛰기를 하는 동안 아이들에게 가장 즐거웠던 놀이는 ‘연날리기’입니다. 겨울에 바람이 거세지면 집집마다 아이들이 연을 들고 나와 서로 자기 연이 더 높이 난다고 자랑하며 놀곤 했습니다. 또 연줄을 서로 엉키게 해 먼저 끊어지는 쪽이 지는 ‘연줄 끊기’도 많이 했는데, 연줄이 먼저 끊어진 아이는 종종 울음을 터트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렇게 많이 즐기던 연날리기가 옛 그림으로 남겨진 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고작 19세기 말 김준근이 그린 풍속화나 20세기 초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 여류화가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1887∼1956)의 그림 정도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 드문 작품 가운데 키스의 ‘연 날리는 아이들’(1936)을 통해 잠시 옛 시절로 돌아가 보고자 합니다.

△연, 정치·군사 용도에서 액막이놀이로

그림에서 앞에 보이는 한 사내아이가 얼레를 돌리며 연을 날리고 있습니다. 그 연을 동생인 듯한 여자아이가 바라보고 있고요. 멋지게 연을 날리는 오빠가 자랑스러운지 여동생은 즐거운 표정으로 연을 바라봅니다. 날씨가 추운 탓인지 둘 다 얼굴이 발그스레합니다. 두 아이들 뒤에는 다른 연들이 같이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배경으로는 저 멀리 하얀 눈이 덮인 산이 보이고 그 앞은 팔각형 지붕의 정자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팔각정 옆에는 제법 높은 탑이 있는데 팔각정과 탑이 같이 있는 공간이라면 우리나라에서 탑골공원밖에 없을 것입니다. 탑골공원은 파고다공원이란 이름으로 지어진 서울 최초의 근대공원으로 3·1운동의 출발지이기도 합니다. 왼쪽 하단에 유독 ‘기덕’(奇德)이란 서명이 눈에 띄는데, 키스의 원어민 발음을 잘 몰라 ‘케이드’라 불렀던 당시, 기덕은 그 발음과 비슷하게 지은 한국이름입니다.

이 그림과 관련해 키스는 1946년에 펴낸 책 ‘올드 코리아’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서울은 연을 날리기에 최고로 좋은 도시입니다. 연 날리는 계절이 돌아오면 갑자기 하늘은 온통 형형색색의 연으로 뒤덮입니다.” 그녀에게 퍽 인상적이었던 연 날리는 장면은 이렇게 고운 색감의 그림으로 탄생했습니다. 다만 연과 두 아이를 삼각형 구도로 그린 그림은 안정적이긴 하지만 감상화로 보기엔 뭔가 심심하긴 합니다.

연날리기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등장할 만큼 아주 오래된 놀이입니다.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신라 선덕여왕 말년에 김유신이 풍연(風鳶)에 불을 달아 밤하늘로 올려 민심을 수습하였다”라고 썼을 만큼 고대에는 정치·군사적 용도로 연을 활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는 평양성 전투에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하지만 연날리기는 고려와 조선에 들어서 민가에 널리 퍼지며 일종의 액막이놀이가 됐습니다. 몇몇 기록이 그 장면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생년, 이름, 액을 없애버린다’란 글자를 쓴 연을 띄우다가 보름날 해질 무렵에 연줄을 끊어 날려 보내는데, 액을 멀리 보낸다는 뜻이다”(‘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 “아이들이 액이라는 글자를 연에다 써서 해질 무렵에 줄을 끊어서 공중으로 날려 보낸다”(‘경도잡지 京都雜志’).

지금 세대는 연날리기를 마치면 연을 다시 수습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연날리기의 피날레는 얼레에 있는 실을 전부 풀고 연을 하늘로 날려보는 것입니다. 또 키스 그림에 등장하듯이 주로 방패연을 날렸는데, 사각형으로 모양을 잡고 가운데 구멍을 뚫은 방패연은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한 연입니다. 방패연은 중앙에 방구멍을 내어 맞바람의 저항을 줄이고 뒷면의 진공상태를 즉시 막아주기 때문에 연이 빠르게 움직여 조종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날리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방패연을 주로 사용했다는 것은 연날리기가 단순히 높이 나는 데 그치지 않고 급상승, 급강하, 회전 등 ‘재주부리기’가 중요한 기술이란 점을 말해줍니다. 그런 연의 재주를 감상하는 것이 연날리기의 포인트였고요.

△풍차·당혜…고유 복식 담은 ‘정원 초하루 나들이’

엘리자베스 키스가 1921년 서울 광화문 일대를 배경으로 그린 ‘정월 초하루 나들이’. 채색목판화로 제작했다(25.7×37.5㎝).


키스의 작품 중 정월과 관련한 그림 한 점을 더 보겠습니다. ‘정월 초하루 나들이’(1921)란 작품입니다. 멀리 있는 산이 하얗게 덮인 것을 보니 한겨울이고, 중층의 문루와 그 앞에 놓인 해치상을 보니 분명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입니다. 두 남매를 데리고 나온 어머니는 딸의 손을 잡고 아들을 향해 무엇인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딸의 손에는 가스를 넣은 풍선이 들렸습니다. 아들은 다른 풍선을 불고 있는데 힘껏 용을 쓰는지 살짝 보이는 볼이 빵빵합니다. 이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색감이 아주 고운 옷매무새입니다. 여인의 푸른빛 두루마기가 멋스럽고 소매에 흰 털이 달린 붉은 토시도 고급스럽습니다. 아이들도 색동저고리, 분홍치마, 푸른저고리, 하얀바지 등을 잘 차려입었는데, 바로 설빔을 입은 것입니다. 키스가 또 다른 저서 ‘동양의 창’(1928)에서 “정월 초하루인 설은 한국의 최대 명절이다. 이날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나들이를 한다”라고 적은 바로 그 모습입니다. 방한모와 신발도 눈에 들어옵니다. 모두 지금은 거의 사라진 우리 고유의 겨울모자인 ‘풍차’(風遮)를 착용했습니다. ‘풍뎅이’라고도 불린 풍차는 모자 뒤를 길게 만든 것이 특징입니다. 모양이 ‘남바위’와 비슷한데 양옆에 귀와 뺨, 턱까지 가릴 수 있는 볼끼가 있으니 풍차가 분명합니다. 보통 여자용은 그림처럼 앞뒤에 장식 끈이나 술·비취·옥 등을 달았습니다. 코가 치켜 올라간 가죽 비단신인 당혜(唐鞋)도 자세히 묘사해 화가의 뛰어난 관찰력이 돋보입니다.

△한국을 응원한 키스…크리스마스실 제작 참여도

키스가 처음 한국에 온 건 1919년 3·1운동이 시작된 지 한 달이 채 안 된 3월 28일입니다. 그녀는 한국에 오자마자 신비롭고 아름다운 한국에 단숨에 매료됐습니다. 그리고 무자비한 일본의 만행과 그에 맞서는 의연한 한국인에게서 큰 감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해 한국인의 생활상을 따뜻하고 정감 어린 시선으로 화폭에 담습니다. 그녀는 한국에서 최초로 전시회를 연 서양화가기도 했지만, 한국을 위해 여러 글을 써 3·1운동과 한국의 모습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한 작가기도 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서 심각했던 결핵의 치유를 위해 크리스마스실을 제작하는 데 세 번이나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연 날리는 아이들’도 크리스마스실 제작에 쓰였던 만큼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포스터 성격의 그림이라 단순한 삼각형의 안정감 있는 구도를 택했던 이유도 설명이 됩니다.

키스가 한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시기는 일제가 우리 민족문화를 말살하려 광분하던 때였습니다. 이런 모진 시절에 이토록 평화로운 정월의 세시풍속을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일제의 억압에 맞서는 한국인의 당당한 의연함과 질긴 생명력을 응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다시 정월을 맞아, 100여년 전 그림 속 아이들이 그랬듯, 연과 풍선에 온갖 근심과 걱정, 못된 바이러스까지 담아 저 멀리 하늘로 띄워 보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기쁜 소식들만 우리 사회 곳곳에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 엘리자베스 키스와 ‘올드 코리아’

‘엘리자베스 키스의 초상화’(1922). 일본 화가 이토 신수이(1898∼1972)가 그리고 채색목판화로 제작했다(42×27㎝). 두 사람은 같은 시기 와타나베 공방에 드나들며 서로 알게 됐다고 전한다. 의자가 아니라 방석에 단정하고 꼿꼿하게 앉은 키스의 모습에서 동양문화를 깊게 이해했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영국 스코틀랜드 에버딘셔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가 동양에 첫발을 디딘 건 1915년. 잡지사를 운영하던 언니 엘스펫 키스와 형부 존 로버트슨 스콧의 초청으로 일본에 내렸다. 이후 언니 내외가 영국으로 귀국하기 전 자매는 한국여행을 하기로 하고 1919년 3월 28일 처음 한국을 찾았다. 미술교육을 정식으로 받진 않았지만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던 키스는 한국에서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모델을 구하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작품활동은 언니가 영국으로 귀국한 후에도 홀로 머물며 계속됐다. 이후 키스는 한국을 비롯해 일본·중국·필리핀을 오가며 여러 작품을 남겼는데, 한국인·한국풍경을 그린 80여점을 비롯해 평생 120여점의 수채화와 채색목판화·동판화 등을 제작했다. ‘한국 최초로 전시회를 연 서양화가’란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21년 서울은행집회소에서, 1934년 서울 미쓰코시백화점(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점)에서 연 전시가 그것. 한국을 소재로 한 두 권의 저서도 냈다. 1928년 출간한 ‘동양의 창’(Eastern Windows)은 여행 중 언니에게 쓴 편지를 편집하며 그림 12점을 소개한 것이고, 1946년 출간한 ‘올드 코리아’(Old Korea: The Land of Morning Calm·엘스펫 키스, 존 로버트슨 스콧 공저)에선 한국을 소재로 한 수채화 39점과 함께 일본 식민지정책을 규탄하는 글까지 실어냈다. 두 책은 각각 2012년과 2006년 뒤늦게 한국어로 번역되며 비로소 우리에게 알려졌다.

△손태호 미술평론가는…

30대 중반 도망치고 싶던 때가 있었다. 세상살이가 버겁고 고달파서. 막막하던 그 시절, 늘 그렇듯 삶의 퍼즐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풀렸다. 그즈음 눈에 띈 옛 그림이 우연이었고 그 흔적을 좇아 미술관·고서화점 등을 누비고 다닌 게 필연이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에 찍힌 인장 ‘장무상망’(長毋相忘·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을 보고 어째서 ‘그림이 삶, 삶이 그림’이라 하는지 깨달았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의 길은 그날로 접혔다. 동국대 대학원 미술학과로 진학해 석·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미술 전문가가 됐다. 조선회화·불교미술에 기둥을 세우고 그 안에 스민 상징 같은 ‘옛 그림’은 거울로 곁에 뒀다. 지금은 한국문화예술조형연구소 학술이사로 있으면서 이론·현장을 연결한 연구, 인물·지리·역사를 융합한 글과 강연에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 ‘조선불상의 탄생’(한국학술정보·2020), ‘다시 활시위를 당기다’(아트북스·2017), ‘나를 세우는 옛 그림’ (아트북스·20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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