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의 세계_19회] 미국 미식문화의 선구자 '제임스 비어드'

강경록 기자I 2025.01.31 06:00:00

美 음식업계의 거장 ‘제임스 비어드’
미국 요식업계 오스카상 ‘제임스 비어드 어워즈’
1991년 시상 이후 끊임없이 진화하며 대상 넓혀
제임스 비어드 재단, 시상은 물론 정신까지 계승

[예종석 한양대 명예교수 겸 음식문화평론가] 인류의 역사는 음식의 변천사이기도 하다. 우리의 밥상은 이미 과거의 밥상이 아니다. 조선 후기의 기록에 성인 남자는 7홉(약 420g)의 쌀로 한 끼 밥을 지어먹었다고 한다. 요즘 공깃밥의 두 배 규모다.

예부터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했지만 이젠 달라졌다. 최근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집계가 시작된 1963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요즘 사람들은 한 끼에 평균 밥 반 공기 정도로 버티고 있다. 반면 돼지, 소, 닭고기 등 3대 육류 소비량은 지난해 기준 1인당 60.6㎏으로 쌀 소비량을 넘어섰다.

우리 경제의 산업화는 외식 산업의 발달과 함께 식생활의 서구화를 가져왔다. 20년 전만 해도 식탁에서 볼 수 없었던 브로콜리, 셀러리, 파프리카가 등장하고 식당에선 부대찌개, LA갈비와 같은 정체가 모호한 음식들이 팔리고 있다. 인스턴트 식품과 배달 음식의 소비도 날로 늘어가고 있다.

한 시대의 음식문화 발전에는 항상 그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인물이 존재한다. 그들은 새로운 식재료와 요리법을 개발하고, 그것을 즐기며 평가하는 사람들이다. 편리한 식기와 식탁예절을 도입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다. 오늘날의 음식문화를 만든 이들이 누구이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브리야 사바랭은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고 했다. 이제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아볼 때다.

미국 대표 음식업계 거장 ‘제임스 비어드’
◇美 요식업계 오스카상 ‘제임스 비어드상’

미국 음식문화 발전의 역사에 제임스 비어드(James Beard, 1903~1985)가 남긴 발자취는 너무나 크다. 매년 5월 초가 되면 미국 전역의 솜씨 좋은 요리사들은 마음이 설렌다. 제임스 비어드상 수상자 발표가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비어드상은 미국 요식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최고 권위의 상이다. 명성이 높은 일류 요리사들의 이력에는 대개 제임스 비어드상 수상 경력이 들어가 있다. 최근에는 한국계 요리사들의 수상도 눈에 띈다.

시상의 대상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요리사도 촘촘하게 지역별로 나눠 선발하지만, 레스토랑과 제과, 와인, 칵테일, 출판 등 분야까지 포함해 시상한다. 요리사뿐 아니라 식품과 관련한 서비스와 산업 발전에 공헌한 미디어 인재들의 탁월한 재능과 성취도 시상 대상에 들어간다. 형평성과 공동체, 지속가능성 그리고 함께 번영할 수 있는 문화에 대한 헌신까지도 발굴해 대상자를 선정한다. 상은 1991년에 시상을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진화하면서 대상 분야를 넓혀왔다.

2023년 인도주의자상은 ‘흑인농부기금’의 공동 창립자이자 사회적 기업가인 올리비아 왓킨스와 농민 활동가인 카렌 워싱턴이 공동 수상했다. 왓킨스는 뉴욕주에 있는 5만 7000여 명 농민 중 139명에 불과한 흑인 농민들을 돕기 위해 120만달러를 모금하고, 다른 지역의 조직들과 지원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해 평생공로상은 전설적인 요리책의 저자이자 셰프 겸 배우인 90세의 마두르 재프리에게 돌아갔다.

2018년 인도주의자상은 허리케인 마리아로 고통받은 푸에르토리코 주민과 산불로 큰 피해를 본 캘리포니아 주민들을 도운 셰프 호세 안드레스가 수상했다. 안드레스는 자신이 설립한 국제구호단체 월드 센트럴 키친과 함께 330만인 분의 음식을 지원했다. 그는 최근에도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에 처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400t의 식량을 실은 구호 선박을 보내기도 했다.

2024년 베스트 뉴 레스토랑 수상자(사진=제임스 비어드 재단)
◇제임스 비어드 재단, 다양한 활동으로 정신 계승

상을 주관하는 제임스 비어드 재단은 더욱 많은 일을 한다. 제임스 비어드 재단은 해산물의 남획을 막고 공급망의 생태계 보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협력단체들과 연대해 스마트 캐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미국 내 레스토랑이 지속가능한 해산물을 더 많이 사용하도록 독려하는 것. 재단은 스마트 캐치 프로그램을 통해 요리사들과 해산물 공급업체들이 해양 생물을 보존하고 환경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해산물을 잡거나 양식하도록 교육하고 지원한다.

요리사들은 스마트 캐치와 함께 현재는 물론 미래 세대를 위해 건강하고 환경보전이 가능한 식품 공급원의 유지 노력에 참여하게 된다. 그들은 스마트 캐치 리더로서 스마트 캐치 스탬프를 획득해 고객들이 자신의 레스토랑을 쉽게 식별할 수 있게 한다. 스마트 캐치는 주방장이 메뉴 결정을 통해 환경에 미칠 수 있는 변혁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장려하는 프로그램으로 재단의 중요 사업으로 자리잡았다.

재단은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앤드 리조트와 제휴해 글로벌 요리 프로그램 ‘테이스트 오브 월도프 아스토리아’를 개최하기도 한다. 대회의 세부 과제는 매번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 제임스 비어드상의 라이징 스타 부문 준결승 진출 요리사들과 월도프 아스토리아의 수석 요리사들이 경쟁하고 협력하는 방식이다. 그들에게는 현대적인 새로운 요리를 창조하고 칵테일 아워를 재창출하라는 식의 임무가 주어진다.

프로그램의 목적은 고객들에게 진정 잊지 못할 새로운 식음료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제임스 비어드 재단의 이사장을 역임한 수잔 웅가로는 “이러한 행사는 미국 요리의 전설 제임스 비어드의 정신을 좇아 셰프들에게 글로벌한 관점을 갖게 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경험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했다.

제임스 비어드 재단이 미국 음식문화의 창달을 위해 이렇게 여러 방면에서 노력하는 것은 그것이 비어드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인 동시에 재단의 설립 철학이기 때문이다. 제임스 비어드는 미국 서부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나고 성장했다. 그의 어머니는 작은 호텔을 운영했는데 솜씨가 뛰어난 요리사여서 아들이 예민한 미각을 갖게 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비어드는 훗날 “그녀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요리하고, 먹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라고 어머니를 회고한 바 있다.

그는 집에 중국인 요리사가 있었던 덕분에 중국 음식에도 일찍 눈을 떴다. 비어드는 1920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리드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중간에 퇴학당하고 만다.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다. 그 후 유럽으로 가서 5년여를 떠돌면서 성악과 연극을 공부했고, 프랑스에 상당 기간 머물면서 프랑스 요리에 빠져 살기도 했다. 1927년에 귀국한 그는 고향과 뉴욕, 할리우드를 떠돌며 라디오 아나운서로 잠시 활동하고, 연극에도 관계하며 영화에 단역배우로 얼굴을 내밀기도 했지만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미국 요식업계의 오스카상 ‘제임스 비어드 어워즈’
◇미국 요리 정립하고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인물

1937년 뉴욕으로 이주한 비어드는 친구 빌 로즈와 함께 칵테일 파티 붐에 편승해 케이터링 회사 ‘오르되브르’를 설립한다. 그 무렵부터 그는 음식에 관한 강연도 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1940년엔 첫 요리책 ‘오르되브르와 카나페’를 출간했다. 유명 요리사 줄리아 차일드는 비어드가 이 책을 계기로 요리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케이터링 사업을 정리한 비어드는 육군에 입대해 암호전문가로 훈련받기도 했다. 군에서 제대한 비어드는 1946년부터 NBC에서 라이브 텔레비전 요리 쇼 ‘나는 먹는 것을 사랑해’를 진행하게 된다. 그것은 최초의 TV 요리 프로그램이었으며 그때부터 비어드는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 권위자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955년에는 제임스 비어드 요리 학교를 설립한다. 그는 그 후 30년 동안 자신의 학교 두 곳과 여성 클럽, 시민 단체 등에서 쉬지 않고 요리를 가르쳐 수많은 전문 요리사를 길러냈다. 그의 요리 철학은 신선하고 건강에 좋은 미국산 재료로 정직하게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이었다. 비어드는 “최고의 재료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없다. 좋은 음식은 맛이 괜찮은 저급한 재료로는 만들 수 없다.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고 낭비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절약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비어드는 가공식품과 간편 식품이 범람하던 시대에 생생한 현지 재료의 사용을 주장하며 계절성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미국 요리를 정립하고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20여 권의 요리책도 남겼다. 비어드는 교육과 저술, 식당을 경영하면서 뉴욕의 ‘포시즌스 레스토랑’ 그리고 지금은 없어진 세계무역센터의 ‘윈도즈 온 더 월드’와 같은 유명 식당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비영리 사업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가 1981년 공동 설립한 구호단체 ‘시티밀즈 온 휠즈’는 지금도 뉴욕 지역 내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1985년에 비어드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동료와 제자들은 그의 뛰어난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임스 비어드 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교육과 장학금 및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음식 문화의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2017년 PBS는 다큐멘터리 ‘제임스 비어드: 미국 최초의 미식가’를 방영하기도 했다. 그의 고향 포틀랜드에선 다운타운에 미식 문화를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랜드마크 ‘제임스 비어드 마켓’을 짓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그를 퇴학시켰던 리드 대학교는 54년 후 그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다.

예종석 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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