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은 우리나라 창덕궁 크기의 영토에 국민 대다수가 성직자인 인구 천여명에 불과한 도시 국가이다. 하지만 바티칸은 13억명 가톨릭 인구를 통솔하는 중심지로, 해마다 600만명이 넘는 순례자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 한국 성인의 조각상이 세워졌으니, 가톨릭 신자와 우리 국민 모두가 자랑스러워하고 기뻐할 만한 일이다.
올해는 한국과 교황청 간 수교 6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이다. 수교의 역사도 길지만, 교황청은 그 이전부터 우리나라와 특별한 인연을 맺어 왔다. 교황청은 한국 정부가 공식 출범한 1947년 이전부터 한국에 교황 사절을 임명해 국제사회에 한국을 국가로 인정하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1948년 유엔에서 우리 정부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받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 특별한 인연은 1963년 12월 11일에 외교관계가 수립된 이후 더욱 발전해 왔다. 그간 세 차례의 교황 방한이 있었고 최근 20년간 역대 모든 우리 대통령들이 교황을 만났다. 특히, 지난 8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에서 한국이 차기 개최지로 선정되면서 4년 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두 번째 방한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거듭 발전해 온 한국과 교황청의 관계가 새로운 60년을 시작하는 원년에 주교황청 대사로 부임한 필자는 교황청 내에서 한국 가톨릭의 위상을 더욱 확대하고, 새로운 수준의 관계로 격상하는데 전력을 다하고자 한다.
한국 가톨릭의 역사는 서구에 비해 짧은 편이지만, 현재 590만여명의 신자를 가지고 있고, 교황청에 대한 재정 기여도도 높은 편이다. 현재 한국인 최초로 장관직을 맡은 유흥식 추기경을 비롯해 교황청 복음화부와 성직자부에는 우리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역할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또한, 1000여명의 신부와 수녀들이 해외에 파견되어 봉사를 나누고 있다.
교황청은 항상 분쟁과 갈등 상황에 있는 국가 간 중재자 노력을 자처해왔고, 지속 가능한 발전, 보편적 인권 증진 등 범세계적인 문제에 대해 권위 있는 목소리를 내왔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난민 문제, 기후변화, 여성 지위 향상, 그리고 한반도 평화에 대한 관심은 특별하다. 세계의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는 우리 외교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세계 가톨릭 교회의 중심으로 큰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교황청과 전후 반세기만에 도움을 받는 국가에서 도움을 주는 국가가 된 대한민국은 세계평화와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협력할 최적의 파트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계가 한국과 교황청이 약속하는 미래 60년의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이 모습이 200여년 전 한국 최초의 가톨릭 신부였던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이 꿈꿨을 미래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