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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에 코로나도 뚫고…3600명 불러들인 '라틴아메리카 피카소'

오현주 기자I 2021.01.11 03:30:00

사비나미술관 ''오스왈도 과야사민'' 특별기획전
1·2차세계대전, 스페인내전 참상 겪으며
불의·핍박에 맞서 붓으로 거침없이 고발
''에콰도르 국보급'' 유화·드로잉 등 89점
한 달 3600명 성황 열기에 2주 연장 결정

지난주 평일 오후에 찾은 ‘에콰도르 국민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 특별기획전 전경. 서울 은평구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에 연 한국 첫 전시가 혹한과 코로나를 무릅쓴 관람객들을 끊임없이 불러모으고 있다. 앞쪽으로 과야사민의 연작 ‘절규 Ⅲ·Ⅱ·Ⅰ’(1983)이, 뒤쪽으로 연작 ‘눈물 흘리는 여인 Ⅰ∼Ⅶ’(1963∼1965)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낮 영하 10도는 우스운 혹한. 여기에 코로나19는 기승을 떨치고 있다. 집 밖으론 나서지 않는 게 답이어야 하는 척박한 시절이다. 그런데 이곳에선 다른 시간이 흐르는 듯하다. 끊임없이 외부인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으니. 그 걸음이 다가선 회색 콘크리트벽으로 앙상한 손마디에 눈물을 적신 여인들이 보인다. 무엇을 잃어 저리도 비통한 건가. 저이들도 처절한 고한을 겪고 있는 건가.

서울 은평구 진관동 사비나미술관. 특별기획전 ‘오스왈도 과야사민’이 열리고 있는 곳이다. 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1919∼1999). 생소하다. 멀리 에콰도르의 ‘국민화가’란 타이틀을 달고 찾아왔는데, 사실 그조차 우리에겐 많은 걸 설명해주지 못한다. ‘라틴아메리카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란 수식도 그다지 도움은 안 된다. 어차피 남미 작가들은 한국에 많이 소개되지 못했다. 멕시코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1886∼1957)와 그의 아내 프리다 칼로(1907∼1954), 콜롬비아 출신인 페르난도 보테로(89) 정도가 낯설지 않다고 할까.

‘에콰도르 국민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 특별기획전 전경. 왼쪽으로 연작 ‘기다림’(1971) 7점이, 오른쪽으로 연작 ‘절박한 사람들Ⅰ·Ⅱ·Ⅲ’(1966)이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런데 한국 전시 자체가 처음인, 그 과야사민의 작품만을 건 전시는 말 그대로 성황이다. 코로나 시국이 허락한 범위 내에서, 시간당 20명씩 하루 120명만 들이는 관람객 수를 꽉 채우고 있는 거다. 처음 예정한 폐막일인 22일까진 예약도 끝났다. 지난달 19일에 개막한 뒤 3600명이다. 서울 중심이 아닌 은평구 진관동이란 위치도 그다지 편치 않다. 그럼에도 무작정 찾아간 관람객을 돌려세우기도 했다는 건데. 다행히 지난 주말, 두 주 남짓 연장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작품을 관리하는 과야사민재단과 ‘복잡한’ 합의를 봤단다. 기왕 어렵게 찾아온 작품을 좀더 잡아두는 게 뭐 그리 복잡할까 하겠지만, 사정이 단순치 않다. 이번에 날아온 유화·드로잉·수채화 등 89점 모두가 에콰도르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재단과는 별개로 에콰도르 정부가 승인을 해야 움직이는 ‘국보급’이란 얘기다.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체에게 경의를 표하다 Ⅱ·Ⅰ’(1978). 기하학적으로 끊어내는 형태, 회색톤 색감 등은 3차원적 입체감을 만든 큐비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렇다면 도대체 과야사민의 무엇이 혹한에, 코로나에, 만만치 않은 위치에, 낯선 남미의 벽까지 녹여낼 수 있었던 건가.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교감이고 공감”이라고 망설임 없이 말한다. “저 시대가 만든 상처와 아픔이 지금 우리가 처한, 처했던 그것에 감정이입해 절절한 공감대를 형성한 게 아닌가 싶다. 분석해야 하는 추상이 아닌 감정에 이끌리는 구상·형상에 마음을 뺏겼을 수도 있고.” 스페인 지배를 받았던 에콰도르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스페인내전 등으로 고통을 겪었다. 과야사민은 그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무차별한 불의와 핍박에 대한 저항을, 붓으로 거침없이 고발해왔던 터. 맞다. 답은 쉽게 풀렸다. 전시장에 들어선 누구라도 단숨에 압도하는 저들의 거대한 손과 눈이 알려줬다.

오스왈도 과야시민의 연작 ‘어머니Ⅰ·Ⅱ·Ⅲ’(1972). 간결하지만 강렬하게 비탄과 애통을 내뿜는 작품들이 한국 첫 전시에 걸렸다. 극대화한 퀭한 눈, 앙상한 뼈마디가 드러난 거대한 손은 과야사민의 최절정기를 관통한 인물화에 자주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퀭한 눈, 앙상한 손마디로 압도하다

일곱 여인이 나란히 섰다. 머리까지 검은 천을 뒤집어쓴 이들은 얼굴과 손만 드러내고 있다. 애절하게 하늘을 바라보는 여인, 이마에 손을 대고 기도하는 여인, 눈물로 뒤범벅돼 뭔가 말하는 여인 등. 단박에 보는 이의 가슴을 적시는 이들은 과야사민의 대표작인 ‘눈물 흘리는 여인’(1963∼1965) 7점 연작이다. 전쟁에 가족을 잃은 여인들이 상복차림으로 비통을 참아내는 모습이다.

여인들의 손과 눈을 유달리 부각한 또 다른 작품은 ‘어머니’(1972) 3점 연작. 역시 간결하지만 강렬하게 비탄과 애통을 내뿜고 있다. 이는 곧 해골 같은 얼굴과 뼈만 남은 몸으로 애끓는 심정을 전하는 7점의 연작 ‘기다림’(1971)을 거쳐 2점의 ‘체에게 경의를 표하다’(1978), 3점의 ‘절규’(1983)에까지 이어진다.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연작 ‘눈물 흘리는 여인 Ⅰ∼Ⅶ’(1963∼1965). 전쟁에 가족을 잃은 여인들이 상복차림으로 비통을 참아내는 모습이다. 그 고통이 한 주 내내 이어지는 것을 7점으로 표현했다고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연작 ‘눈물 흘리는 여인’ 중 작품 Ⅱ·Ⅲ·Ⅳ(1963∼1965)(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약자가 아닌 위정자의 초상도 있다. ‘펜타곤에서의 회의’(1970)에 묶인 5점은 독일군 장교, 독재권력자, 스파이군인 등의 비열한 탐욕을 흘리고 있는데. 흡사 한자리에서 모여 회의를 하는 듯한 각각의 작품은, 불안한 시대상을 비추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은 작가의 지독한 풍자성이 돋보이는 수작이라 할 만하다.

퀭한 눈과 뼈마디 앙상한 거대한 손은 과야사민의 최절정기를 관통한 인물화에 자주 보이는 구성이다. 이를 두고 3차원적 입체감을 만든 큐비즘 영향으로 분석하는데, 기하학적으로 끊어내는 형태, 회색톤 색감이 격한 감정을 ‘각’으로 표현했다고 할까. 바로 여기서 파블로 피카소의 큐비즘·입체주의가 언뜻 비친다. 과야사민의 또 다른 별칭 ‘라틴아메리카의 피카소’가 나온 배경과 무관치 않은 거다. 게다가 피카소의 2대 걸작 중 한 점인 ‘게르니카’(1937) 역시 스페인내전을 고발한 작품이 아닌가.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연작 ‘펜타곤에서의 회의 Ⅰ∼Ⅴ’(1970). 과야사민이 사회적 약자가 아닌 위정자를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위선적 권위와 권력, 폭력을 상징하는 독일군 장교, 독재권력자, 스파이군인 등을 그렸다. 가로세로 179㎝ 정사각형 프레임에 각각 담아낸 거대한 작품에선 불안한 시대상과 더불어 작가만의 풍자성이 상존한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연작 ‘펜타곤에서의 회의’ 중 작품 Ⅲ·Ⅳ·Ⅴ(1970)(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과야사민의 ‘각’은 노년기로 접어들며 누그러진다. 세상과 역사에 분노했던 자리에 한결 부드러워진 색과 선의 인류애를 덧입힌 거다. 그 무렵의 ‘두 머리’(1986∼1987), ‘온유’(1989), ‘연인들’(1989), ‘어머니와 아이’(1982·1989) 등이 걸렸다.

섬뜩한 참상이 적나라하지만은 않은 건 단연 과야사민의 회화성이다. 슬프다 말할 수 없는 비감, 노엽다 성낼 수 없는 분노를 낭자한 핏빛이 아니어도 절정에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얘기다.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온유’(1989)와 ‘어머니와 아이’(1982). 1980년대부터 타계한 해인 1999년까지, 노년기 과야사민은 세상과 역사에 대한 분노를 내려놓고 한결 부드러워진 색과 선의 인류애를 덧입혀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연인들’(1989)과 ‘어머니와 아이’(1989). 1980년대부터 타계한 해인 1999년까지, 노년기 과야사민은 세상과 역사에 대한 분노를 내려놓고 한결 부드러워진 색과 선의 인류애를 덧입혀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거대한 콘크리트벽을 울리는 호소력 짙은 슬픔

2m에 달하는 굵직한 대작들을 살려낸 절반은 미술관의 외용이다. 수차례 색을 바꿨다는 가림막 외에 굳이 의도하지 않은, 콘크리트벽을 드러낸 높은 층고는 마치 기다려왔던 듯 작품들을 감싸 안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전시를 사립인 사비나미술관에 유치할 수 있었던 데는 이 요소도 작용했을 터. 사실 전시는 2019년 5월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에콰도르를 공식방문한 데서 성사됐다. 1962년 양국 수교 이래 처음 이뤄진 고위급 자리에서 에콰도르 정부는 이 대표를 과야사민미술관으로 이끌었고, 감흥을 받은 이 대표가 한국 전시를 제안했다는 거다.

인터뷰 중인 생전의 오스왈도 과야사민. 서울 은평구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이 ‘에콰도르 국민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 특별기획전에 소개한 영상을 다시 촬영했다(사진=사비나미술관·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하지만 코로나 변수가 겹친, 10개월 남짓한 준비기간이 절대 녹록지 않았단다. 작품 선정 등 전시에 대한 논의는 화상으로만 진행해야 했고, 작품을 들여오는 데 드는 항공료는 3배 이상 뛰었다. 그럼에도 미술관은 전시를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로 힘겨운 시민들에게 선물이 됐으면 했다”는 게 이 관장의 말이다.

과야사민이 남긴 작품은 회화 5800여점, 조각 150여점. 그중 과야사민재단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이 유화 250여점과 드로잉 18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2018년 필립스경매에서 ‘비명’(1976)이 13만 1250달러(약 1억 4300만원), 2019년 소더비경매에서 ‘소유’(1973)가 13만 7500달러(약 1억 5000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전시는 2월 6일까지.

지난주 평일 오후에 찾은 ‘에콰도르 국민화가 오스왈도 과야사민’ 특별기획전 전경. 서울 은평구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에 연 한국 첫 전시가 혹한과 코로나를 무릅쓴 관람객들을 끊임없이 불러모으고 있다. 왼쪽 벽면에 과야사민의 수채화와 드로잉 24점을 모아 걸었다. 오른쪽으론 과야사민의 ‘온유’(1989)가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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