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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 미술평론가] 17세기의 유럽을 압도한 바로크 예술은 매우 장엄하고 역동적인 예술이다. 특히 바로크 회화는 생생한 사실감과 강렬한 명암대비가 돋보인다. 이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의 한 사람이 이탈리아 출신의 카라바조(1573∼1610)다. 카라바조의 회화가 주는 혁신의 영감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걸작 ‘의심하는 도마’(1603)를 통해 그의 회화가 지닌 특징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의심하는 도마’는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과 만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화면 맨 왼쪽의 남자가 예수이고, 오른쪽의 세 남자가 그의 제자들이다.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사실을 지금 믿지 못하고 있다. 특히 맨 앞에 그려진 도마는 노골적으로 의심을 드러내 보인다. 그러자 예수가 도마의 손을 잡아 창상(創傷)이 난 자신의 옆구리로 가져간다. 살아 있는 사람의 몸으로 손가락이 쑥 들어가니 도마는 너무 놀라 이마에 주름이 확 생겼다. 그림의 도마는 옷이 터져 속이 드러났는데도 꿰맬 겨를이 없을 정도로 각박한 삶을 살고 있다. 손톱에는 때까지 끼었다. 그의 직업이 어부였던 것으로 전해지는 만큼 생생한 노동의 흔적이다. 서민의 이미지를 특유의 강한 명암대비법(‘키아로스쿠로’)에 실어 실제처럼 핍진하게 묘사한 탓에 현실세계가 우리 코앞에 바짝 다가선 느낌이다.
△카라바조 “저잣거리 서민들이 나의 스승”
카라바조를 필두로 당시 많은 바로크 화가들은 이처럼 강렬한 사실적 표현을 추구했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프로테스탄트의 종교개혁에 맞서 예술이 가톨릭의 위세를 드높이고 교리를 전파하는 최선봉에 서야 한다고 선포했는데(트리엔트 공의회 1545∼1563), 그 흐름에 발맞춰 많은 미술가들이 강렬하고 드라마틱한 작품들을 쏟아냈다.
카라바조의 그림처럼 키아로스쿠로 기법에 기초한 그림뿐 아니라, 조반니 바티스타 가울리(1639∼1709)의 ‘예수의 거룩한 이름의 승리’(1670∼1683)처럼 ‘디 소토 인 수’(di sotto in su) 기법에 기초한 천장화들도 그려졌다. ‘디 소토 인 수’는 밑에서 위로 올려다볼 때 나타나는 사물의 급격한 형태 변화를 생생히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이 기법에 의지해 그림을 그릴 경우 평면인 천장이 갑자기 아득한 깊이를 지닌 하늘로 변해 환영의 느낌이 매우 강하게 다가온다. 영화 ‘해리 포터’에서 호그와트학교 천장에 촛불이 무수히 떠 있고 그 위로 아득한 밤하늘이 펼쳐지는 장면을 떠올리면 좋겠다.
이렇듯 바로크 회화는 이전의 그 어떤 회화보다도 출중한 리얼리티를 보여줬고, 최고의 스펙터클을 느끼게 했다. 바로 이 박진감이 바로크 미술을 이전의 미술과 크게 구분 짓는 혁신성이었다. 이런 혁신을 이루기까지 미술가들이 벌인 노력은 치열했다. 특히 카라바조는 저잣거리에 나가 끊임없이 서민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옮겼다. 추함과 잔인함까지 그대로 그려 고도의 리얼리티를 획득했다. 그로 인해 걸작 ‘성모 마리아의 죽음’(1605∼1606)을 그렸을 때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성모로서 그 어떤 위엄과 영광도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의 주검을 그렸기 때문이다. 머리를 흐트러뜨린 푸석푸석한 시신을 보고 보수적인 성직자들은 지나치게 불경스럽고 모독적인 그림이라며 반발했다.
그런 비난이 있을 때마다 카라바조는 저잣거리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저들이 나의 스승”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의 사실주의를 일컬어 ‘저잣거리 자연주의’(street naturalism)라고 부르기도 한다. 당시 로마는 성직자·용병·순례자·예술가·도둑·거지·창부 등 온갖 사람들이 몰려들어 출세와 한탕을 위해 경쟁하고 시기하며 폭력을 일삼던 도시였다. 그 생생한 ‘인생극장’의 뉘앙스가 고스란히 담긴 그의 그림은 그 어떤 화가보다 당대의 관객들에게 큰 호소력을 가졌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지금도 치열하게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의 시선을 강렬하게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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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늘 현장에서 고객과 지속적 상호작용해야
이런 카라바조의 현실주의 미학은 “현장에 답이 있다”는 비즈니스 격언을 되새기게 한다. 현장은 늘 우리의 지식과 통념을 뛰어넘는다. 현장은 끝없이 변한다. 부지런히 반복해서 현장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혁신을 이룰 수 없다.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실험이 하나 있다. 바로 ‘1달러 거저 주기’ 실험이다.
이 실험은 미국의 변호사이자 혁신 컨설턴트인 다이애나 캔더가 대학생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기 위해 행한 것이다. 우선 학생들에게 1달러짜리 지폐 5장을 주고, 공공장소에 가서 1달러씩 거저 나눠주도록 했다. 모두 5달러이니 기회는 딱 다섯 번이다. 학생들이 각자의 장소로 흩어지기 전에 캔더는 ‘누가 그들의 타깃이 될지, 타깃의 주의를 끌기 위해 어떤 말을 할 것인지, 다섯 번의 기회 중 몇 번을 성공시킬 것인지’에 대한 간략한 계획서를 만들도록 했다. 학생들은 모두 5달러를 다 주고 올 것이라고 자신했다. 공짜로 돈을 준다는데 누가 마다할까. 이거 너무 쉬운 과제가 아닌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떤 사람은 바쁘다고 돈을 받지 않고, 어떤 사람은 의도를 의심해 돈을 받지 않았다. 연령과 성별, 직업군에 따라서 거부 반응도 제각각이다. 타인에게 거저 돈을 주는 것조차 이렇게 어렵다. 이 실험의 결과를 통해 학생들은 비즈니스에서 계획이란 하나의 출발점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계획은 부단히 수정될 수밖에 없고, 계속 현장으로 돌아가 고객과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우치는 것이다. 특히 스타트업일수록 현장, 곧 고객과의 지속적인 교감이 매우 중요하다.
△드러커 “기업에 생명력 부여하는 건 내부 통제 아닌 외부 고객”
‘린 스타트업’(The Lean Startup·2011)의 저자 에릭 리스는 많은 스타트업이 실패하는 이유가 “철저한 시장조사, 정교한 전략과 기획 등(전통적인 경영기법)에 현혹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런 ‘관념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현장의 고객과 구체적으로 상호작용함으로써 눈앞의 불확실성을 제거해나가는 게 우선이라고 충고한다. 리스는 처음부터 너무 완벽한 제품을 내놓으려 할 게 아니라, 핵심 기능만 갖춘 ‘최소 요건 제품’(minimum viable product·MVP)을 만들어 고객의 반응을 먼저 살피라고 제안한다. 그렇게 MVP의 성과를 측정하고 개선한 뒤 이 과정을 반복해 실패의 위험을 최소화하고 시장에 빠르게 적응해가라는 것이다.
현대경영학의 창시자로 꼽히는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1909∼2005)는 늘 현장에서 답을 얻은 대표적인 기업가로 ‘타임’ ‘포천’ ‘라이프’를 창간한 헨리 루스(1898∼1967)를 꼽았다. 드러커는 루스가 “모든 성공은 고객과 함께 출발한다는 자명한 진리에 눈뜬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루스가 ‘라이프’를 편집할 때 사진작가들과 자주 다퉈 “다시는 루스와 함께 일하지 않겠다”고 한 이들도 있었지만, 잡지를 받아든 그들 대부분은 루스의 판단이 결과적으로 옳았다고 긍정하곤 했다는 것이다. 사진작가들은 전문가의 시각에서 봤으나 루스는 독자의 시각에서 봤기 때문이다. 그런 루스의 시각은 기업 외부에서 기업 내부를 보는 시각, 곧 ‘아웃사이드-인 퍼스펙티브’(outside-in perspective)이며, 바로 이런 시각이 그의 성공을 뒷받침한 것이다. 드러커는 “기업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또 기업을 유지하는 것은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지 내부의 통제에 있는 것이 아니며, 고객은 그런 외부 현실과 힘을 움직이는 주동자”라고 단언했다.
끝없이 현장을 살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답은 현장에 있다.
※ 디 소토 인 수 di sotto in su. 이탈리아어로 ‘아래로부터’ ‘밑에서 위를 올려다본’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15세기 말 르네상스 천장화를 제작하면서 터득한 미술기법이다. 바닥에 발을 디딘 상태에서 위를 올려다봤을 때 공간구조에 따라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사물·인물·배경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정중앙에 시선을 고정하면 평면이 입체인 양 수직공간이 끝없이 확장해 마치 하늘이 뚫린 듯한, 혹은 인물이 승천하거나 추락하는 듯한 착시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덕분에 인간이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하늘세상을 그려내야 하는 신성한 종교화에 ‘맞춤’이었다. 바로크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가울리의 천장화 ‘예수의 거룩한 이름의 승리’(1670∼1683)가 그중 한 점이다.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일 제수 교회’(정식명칭은 ‘예수의 신성한 이름 교회’다)의 천장에 프레스코화로 그린 작품은 “교회의 궁륭(연속된 아치로 이뤄진 반원통 모양의 구조물)이 열려 하늘로 뻥 뚫린 듯한” 아찔한 환각에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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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헌 미술평론가는…
미술로 삶을 보고 세상을 읽는다. 좀 더 많은 이들이 미술을 통해 일상의 풍요를 누리도록 글 쓰고 강연하는 일이다. 소명으로 여긴다고 했다. 발단이 있다. 홍익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돌연 일간지 기자가 되면서다. 그림에 관심을 잃어서가 아니라 그림을 막은 생계 때문이었다. 낮에 일하고 밤에 그리자 했다. 하지만 ‘투잡’은 쉽지 않았다. 미술담당 기자생활에서 얻은 필력과 생각을 가지고 현장으로 나왔다. 미술을 대중과 제대로 연결하는 미술평론가의 ‘진정한’ 역할, 그것을 해보자 했다. 그렇게 가나아트 편집장을 하고, 학고재 관장을 오래 한 뒤 서울미술관 초대관장까지 지냈다. 지금은 양현재단 이사로 있으면서 온전히 글과 강연에만 집중하고 있다. 지은 책이 수십 권이다. 굳이 대표작을 꼽자면 ‘리더의 명화수업’(2018), ‘역사의 미술관’(2011), ‘지식의 미술관’(2009),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 1·2’(2005)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