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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는 밤마다 택시를 잡기 위해 길거리를 헤매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특히 안전 등을 이유로 심야시간 운행을 기피하는 고령 운전자 개인택시가 늘면서 심야시간 택시 승차난이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법인택시의 열악한 처우를 견디지 못하고 이탈한 기사들이 개인택시로 전업하면서 이같은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며 승차난 해소를 위해서는 택시기사 처우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택시기사 31.2% 65세↑…개인 심야시간 운행 급감
서울시가 추산한 심야 시간 적정 개인택시 운행 대수는 하루 평균 약 3만 5079대. 하지만 실제 운행하는 평균 개인택시 대수는 약 2만 5000대로 6800~1만대 가까이 부족하다.
서울연구원이 2016년 발간한 정책리포트에 따르면 개인택시 운행률은 오후 4시쯤 48.5%로 최정점을 찍고 심야시간대부터 △자정~오전 1시 41.4% △오전 1~2시 33.1% △오전 2~3시 22.5% △오전 3~4시 14.4%로 급격히 감소했다.
연령별로 보면 60세 미만 개인택시 기사의 심야시간 운행률은 53~65%로 절반을 상회했지만 60~64세 기사의 운행률은 37~47%로 급격히 떨어졌다. 이후 △65~69살 27~34% △70세 이상 17~24%로 고령운전자일수록 심야운행 기피현상이 두드러진다.
반면 법인택시는 오전ㆍ오후 교대 근무 특성으로 낮과 밤의 불균형이 심하지 않다. 오후 시간대부터 지속적으로 공급이 증가해 개인택시와 달리 심야시간인 자정(65.1%)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오전 3~4시에도 법인택시는 42.4%가 운행했다.
전문가들은 택시기사 고령화로 인해 체력과 안전상의 문제로 취객 승객을 피하려는 기사들이 늘면서 심야시간대 택시부족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2011년과 2017년 12월 서울시 전체 택시기사 연령대 비중을 비교해보면 7년 새 40대 기사는 급감한 반면 70대 기사 비중은 크게 늘었다. 40대 기사 비중은 2011년 18%에서 지난해말 7.92%로 반토막 난 반면 70대 운전자 비중은 4.4%에서 12.2%로 3배 급증했다. 65세 이상 택시기사는 전체 기사 중(8만 2251명, 지난해 12월 기준) 중 31.2%(2만 5511명)에 달한다.
택시기사 고령화는 개인택시에서 두드러진다. 65세 이상 고령 택시기사들 중 법인택시 운수종사자 비중은 19.67%(6492명)이나, 개인택시 운수종사자 비중은 38.63%(1만 919명)에 달한다.
◇ 체력부족·주취폭력에 고령택시 심야운행 기피
개인택시 기사 임종수(가명·70)씨는 “운전을 40년 넘게 했다. 운전실력은 자신있지만 나이 앞에는 장사없자는 말을 실감한다”고 했다. 임씨는 “새벽 시간 운전할 때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턱이 뻐근해질 때까지 껌을 씹는 등 졸음을 쫓으려 하지만 쉽지가 않다”며 “눈도 침침해져 비오는 날 밤에는 아예 운전을 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심야 시간 주취 승객과 마찰을 빚거나 폭행 등 피해를 받을 것을 꺼려 운전대를 잡지 않는 고령 택시 기사들도 적지 않다.
개인택시 기사 박팔모(가명·67)씨는 “지난 연말 새벽 을지로에서 취객을 태우고 가던 중 시비가 붙어 얼굴과 갈비뼈 등을 주먹으로 맞아 한 달 가까이 병원 치료를 받았다”며 “그 날 이후 건강이 많이 악화됐고 겁이 나 더 이상 새벽에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심야 승차난 해소를 위한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송년회 등 각종 모임이 몰리는 연말(31일까지) 한시적으로 오후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4시까지 개인택시 부제를 해제했다. 이를 통해 하루 약 1만5000대의 개인택시가 추가로 운행할 수 있게 됐지만 실제 참여한 차량은 1500∼2000대 정도에 그쳤다.
개인택시 기사를 법인택시와 마찬가지로 순번을 정해 심야운행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직업 선택의 자유와 개인의 재산권 침해한다는 반발에 밀려 포기했다.
서울시 택시정책팀 관계자는 “개인택시 기사들이 고령일수록 시력과 인지능력 등이 떨어져 야간 사고 위험 우려가 높아 심야 운전을 지양한 것도 있지만 심야 시간에 주취, 폭력 등 외부적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특히 높아 꺼리는 게 크다”며 “현재로서는 심야운행을 강제할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 관계자는 “여러 요인이 얽힌 심야 승차난 문제를 고령 개인택시 기사 문제로만 돌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심야 운행률이 떨어지는 것 중 하나는 심야시간대 수입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인 것도 있고, 법인택시 기사들이 줄어든 것도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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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정 서울연구원 도로교통연구팀 연구위원은 “지난 몇 년 간 개인 및 택시 운전기사 현황 추이를 살펴보면 법인택시 기사 수와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법인택시 업계의 낮은 처우를 견디지 못해 이탈하는 기사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고령 개인택시 기사들이 많아진 것도 법인택시 이탈 현상과 궤를 같이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법인택시의 하루 평균 운송수입금은 택시요금이 지난 2013년에 2400원에서 3000원으로 600원 오르면서 2013년 말 15만 1787원에서 지난해 말 16만 8368원으로 10.9%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4만 400명이던 법인택시 운전기사는 3만 3002명으로 줄어들면서 비중 또한 4년만에 44.9%에서 40%로 4.9%포인트 감소했다. 수입이 소폭 증가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열악한 근무여건 탓이다.
법인택시는 보통 2교대 체제로, 기사 한 명이 하루 12시간씩 한 달에 26일을 근무한다. 운송수입금이 올랐어도 사납금을 제하면 법인택시 기사 한 명이 벌 수 있는 월수입은 200만원 남짓이다.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 관계자는 “수입이 늘었으나 대부분 사납금으로 돌아가 기사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별로 없다”며 “서울시 법인택시 중 45% 가까이 공차(空車) 상태인데, 이는 법인택시업계 처우가 그만큼 열악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