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직된 노동시장, 교육·인구까지 영향…‘창조적 파괴’ 나설 때"

권효중 기자I 2025.01.31 06:00:00

[대한민국 새판짜기]특별인터뷰
"韓 잠재성장률 끌어올리기 위한 구조개혁 절실"
"호봉제·연공서열로 경직된 노동시장, 효율성 저해"
"효율성·생산성 추구, 기회 부여하는 사회 만들어야"

조동철 KDI 원장이 지난 15일 세종 KDI 본원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KDI)
[대담=이데일리 함정선 경제정책부장·정리=권효중 기자] “지난 30~40년 미국과 유럽의 차이가 확 벌어진 이유 중 하나가 효율성을 저해하는 경직성입니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유럽은 성장 측면에서 미국에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경직된 문화를 개혁해야 연공서열과 호봉제로 대표되는 노동시장, 그와 결부해 ‘일류 대학’만을 지향하는 교육 문화와 저출생 기조까지 바꿀 수 있습니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최근 세종 KDI 본원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조 원장은 저성장 기로에 선 우리 경제가 반전을 꾀할 수 있는 해법으로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해왔다.

지난해 11월 KDI는 올해 우리 경제 성장률을 2.0%,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예상하며 해법으로 구조개혁을 들었다. 구조개혁을 통해 노동과 자본 등 생산에 필요한 요소들의 효율성을 제고해야 잠재성장률도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난해 12월 개최한 콘퍼런스의 주제 역시 ‘한국 경제 생산성 제고를 위한 개혁방안’으로 정했다.

조 원장은 구조개혁을 위해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가 기반이 돼야 한다고 봤다. 기존 질서와 구조를 파괴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파괴가 있어야만 혁신을 추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조 원장은 개혁이 필요한 여러 과제 중 가장 시급한 것으로 노동시장을 손꼽았다. 조 원장은 “‘한 번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다 된다’는 식의 경직성이 ‘일류 대학만 들어가면 된다’로 이어지며 과도한 사교육 부담과 저출생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 원장은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비정규직은 과소보호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곧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지게 된다”며 “일한 만큼 보상받는 체제에서 각자가 생산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조 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이어진 탄핵정국이 최근 윤석열 대통령 체포까지 왔다. 경제 타격이 우려된다.

△환율 등 금융지표만 놓고 보면 탄핵 충격이 크지 않다.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도 미국 달러의 강세에서 주로 기인하는 것을 고려하면 실제 원화의 변동폭은 2% 내외에 불과했다. 주가도 8년 전(박근혜 탄핵 정국)과 비교하면 오히려 더 안정적이다.

다만 심리지표가 문제인데, 이 역시 실물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 판단하기엔 시간이 필요하다. 소비가 위축됐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막상 12월 신용카드 사용액 등 일부 지표만 보면 급락이라고 보기엔 아직 어렵다. 지난해 물가 안정과 금리 인하가 이뤄져 실질임금이 올라간 측면도 있어서 소비가 최악이었던 2년 전보다는 여력이 있다.

-소비침체 등에 우려가 커지며 ‘재정 역할론’도 커지고 있다.

△추경(추가경정예산)은 1분기 경제 상황 등을 지켜보고 판단해도 크게 늦지 않다. 지금 해야 할 일은 ‘열심히 있는 것을 빨리 쓰는’ 것이다. 올해가 지나며 나오는 지표들이 예상보다 나쁘다면 여야 모두 추경에 큰 이견은 없을 것이다. 우선 조기집행과 더불어, 만약 추경을 진행한다면 국회를 통과하며 삭감한 예산 복원, 사회기반시설(SOC) 등에 집중할 수 있다. 다만 재정으로는 근본적인 잠재성장률 방어가 불가능하다.

-한편에서는 구조개혁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구조개혁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이 때문에 지금 하지 않으면 10년, 20년 후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제일 근본적으로 개혁이 필요한 부분은 노동시장이다. 당장 신산업 발전을 위해 빠르게 추진할 수 있는 규제 개선과 더불어, 경직돼 있는 노동시장 구조를 바꿔야 교육 등 사회 제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

-경직된 노동시장 때문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나.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하지 않으면 결국 생산성이 떨어진다. 해고가 쉬운 것으로 알려진 미국이지만, 지난해 KDI의 연구(중장년층 고용 불안정성 극복을 위한 노동시장 기능 회복 방안, 한요셉)에 따르면 장년층 근속연수는 미국이 오히려 한국보다 길다. 노동자는 자신의 효율성과 생산성에 따라 퇴직 후에라도 재취업을 통해 다시 일할 수 있고, 고용주 역시 정년 후 재고용 등으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경직된 호봉제, 연공서열 등은 고성장 시대에나 유지될 수 있는 구조이며, 오히려 생산성을 저해할 수 있다.

-우리도 계속고용, 정년연장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고용계약은 상호 간 이해관계에 따라 이뤄지는 ‘계약’이다. 오래 다니면 자연스럽게 급여를 더 받을 수 있다는 호봉제의 논리는 임금이 곧 생산성과 연계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연스럽게 생산력이 저하할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은 상대적으로 임금을 더 받을 수 없고, 미래에 대한 기대도 떨어진다. 이러한 좌절은 장기적인 미래의 생산성 하락을 낳고,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다’는 경제 원칙과도 맞지 않는다.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하면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나.

△일단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짧게는 30년에서 길게는 50년이 보장된다고 여겨진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일류 대학을 통해 좋은 직장에 들어가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현재의 사교육 과투자로 이어지고 국가적 낭비가 된다.

학벌을 중시하고, ‘간판’을 따지는 문화와 이로 인해 아이를 낳지 않는 저출생도 결국 이와 연관한 문제다.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다는 뜻이다.

-구조개혁의 경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데 해법은.

△구조개혁은 결국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법제화가 우선 이뤄져야 하기 때문에 정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 쥐고 있는 것을 놓지 않고, 효율적인 분배에 나서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금 세대의 책임이 된다.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고, 기회가 필요한 부분엔 충분히 기회를 부여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창조적 파괴’가 가능하다. 기존 구조를 타파하고, 효율성과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조동철 KDI 원장은…

△1961년 출생 △서울대학교 경제학 △서울대 경제학 석사 △미국 위스콘신대학교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및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미국 텍사스 A&M대 경제학과 교수 △KDI 수석 이코노미스트 및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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