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한국여행업협회(이하 여행업협회)의 ‘밀월관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문체부의 여행 관련 정책 사업을 독점하다시피 해온 여행업협회가 이번에도 사업을 따내는 과정에서 ‘밀어주기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현재 여행업협회는 여행업계를 대표해 관광통역안내소 운영, 여행정보센터 및 여행불편처리센터 운영, 궁 및 박물관 중국어 전담안내사 배치 등 각종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발단은 문체부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전국 여행사 대상 ‘국내여행 조기예약 할인상품 지원’ 사업 건이다. 여행사가 신규 여행상품을 개발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선정 여행사는 6종류의 상품을 지정 플랫품에서 판매할 수 있고, 상품가 1인당 최대 6만원의 지원비를 받을 수 있다. 여행사를 돕기 위한 취지의 상품으로, 이 사업에만 약 100억원의 정부 예산을 투입한다.
취지와 방식은 나쁘지 않다. 여행사는 매출이 올라 도움이 되고, 소비자는 혜택을 누릴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 사업을 발표하자마자 수혜자 격인 중소여행사 두 곳이 사업 집행정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내며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이 반기를 든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공정한 사업 입찰 절차 등을 거치지 않고, 일개 이익단체에 지나지 않는 여행업협회에 100억원 대의 국가지원사업을 맡겨 공정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문체부는 “여행업협회는 관광진흥법상 문체부의 승인을 받은 유일한 여행업 관련 업종별 협회로, 그동안 다양한 공공사업을 공정하게 진행해왔다”며 사업 추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같은 해명은 오히려 더 큰 논란을 불러왔다. 문체부 산하에 여행업 관련 업종별 협회가 몇십 년 동안 단 하나라는 것만으로도 협회 이권자들에게 문체부의 각종 지원책이 돌아갔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게 했다. A 지방여행사 대표는 “그동안 여행업협회의 행태를 보면 몇몇 회원사의 사익 추구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라면서 “문체부 후원 ‘우수 여행사 선정’에서도 늘 몇 안되는 회원사에 혜택을 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올해 국내여행 분야 우수여행사 12개가 공교롭게도 모두 여행업협회 회원사다. 2019년에도, 2018년에도, 2017년에도 협회 회원사가 우수여행사였다. 여행업협회는 이 사실을 줄곧 부인해왔지만, 최근 모두 사실이었음이 드러났다. 여행업협회는 전국 2만 1000여개 여행사 중 불과 2.8%인 618개사를 회원으로 둔 단체다.
국내 여행업계가 전례 없는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개점 휴업상태로, 매출 ‘제로(0)’가 이어지고 있다. 대형 여행사들은 상장폐지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충격적인 전망도 있다. 정부가 벼랑 끝에 내몰린 여행업계를 위해 지원책을 서두르는 것도 이해되는 대목이다. 아쉬운 점은 정책의 속도만큼 신뢰와 공정성 확보에 소홀했다는 점이다. 정작 정책 수혜자인 여행업계와 충분한 소통을 거치지 못하면서 정책의 진정성도, 설득력도 빛이 바랬다. 문체부의 안일함이 그동안의 고질적인 병폐를 드러나게 한 셈이다.
처음부터 한국관광공사나 제3의 기관에 이 사업을 맡겼으면 어땠을까. 최소한 공정성 시비는 없었을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화살은 이미 당겨져 날아갔다. 문체부는 이제라도 여행업계에 공정한 기회가 갈 수 있도록 관리·감독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