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 규제 1년이 지난 지금 아픔을 딛고 일어나 우리나라는 오히려 반도체 산업을 소재·부품·장비(소부장)까지 넓게 바라보게 됐고, 소부장 국산화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 중 가장 앞선 성과를 보이는 분야는 무엇일까요. 바로 불화수소입니다. 오늘 ‘배진솔의 전자사전’에서는 불화수소가 왜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필요한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불화수소, 수백 단계 공정…불필요한 부분 깎고, 불순물 씻어내고
웨이퍼 한 장이 반도체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두 달의 시간 동안 확산공정, 포토공정, 식각공정, 증착공정, 이온주입공정 등을 수백 단계의 공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 불화수소는 반도체의 식각공정과 세정공정에 쓰이는 핵심 소재입니다.
불화수소는 수소와 플루오린이 만나 탄생한 화합물로 플루오린화 수소라고도 불립니다. 수소와 결합된 플루오린은 불소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원소인데요. 반응성이 강하고 플라스틱이나 유리를 녹이는 성질이 있습니다. 이 성질을 이용해서 반도체 식각 공정에서는 회로 패턴 외에 불필요한 부분을 부식하는데 사용하고, 농도를 묽게 해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한 세정 공정에서도 사용하는 것이죠.
식각 공정은 판화를 떠올리면 됩니다. 나무, 금속, 돌 등의 면에 뭔가 그려서 잉크나 물감을 칠해 종이나 천에 인쇄하는 방식입니다. 웨이퍼에 액체 또는 기체의 불화수소를 이용해 불필요한 부분을 선택적으로 제거함으로써 반도체 회로 패턴을 형성하죠.
세정공정은 미세공정을 다루는 반도체에서 수율을 높이는 데 아주 중요한 과정입니다. 확산공정, 포토공정, 식각공정, 증착공정 등 수백 여 단계 공정 사이사이에 반복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죠. 불화수소는 웨이퍼 표면의 불순물을 하나하나 씻어주는 작업에 들어갑니다. 반복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진행 횟수가 다른 공정보다 2배 정도 많아 고순도의 불화수소가 특히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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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불화수소의 일본 수입액은 얼마나 될까요.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1~5월 불화수소의 일본 수입액은 403만 3000달러(약 48억 5000만원)로 작년 같은 기간의 2843만 6000달러(약 342억 6000만원)보다 85.8% 급감했습니다. 불화수소 일본 수입 비중도 작년 같은 기간 43.9%에서 올해 12.3%로 대폭 낮아졌죠.
그런데 불화수소는 가스상태와 액체상태가 있는데요. 반도체 미세 공정수준이 올라갈수록 액체보다는 기체 형태의 불화수소가 더 많이 쓰입니다. 불화수소의 끓는 점이 19.5℃인데 상온(25℃)에서는 기체 상태로 존재했다가 충분히 낮은 온도이거나 높은 압력을 가할 땐 액체상태가 됩니다. 원재료라고 할 수 있는 가스상태의 불화수소를 원래 일본이 꽉 잡고 있었고요.
지난해 말 SK(034730)그룹의 소재 계열사 SK머티리얼즈(036490)가 초고순도 불화수소 가스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지난달 17일부터 초고순도(순도 99.999%) 불화수소 가스 양산에 들어가 2023년까지 불화수소 가스 국산화율을 7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입니다.
또 현재 액체 불화수소 공장을 늘린 솔브레인(036830)과 램테크놀러지(171010)는 지난해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에 안정적으로 액체불화수소를 공급하면서 기체 불화수소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기체 불화수소까지 국산화하는 데 시간이 오래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