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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징금 액수만 놓고 보면 ‘용두사미’다. 그러나 이번 심결의 의의는 적지 않다. 그동안 공정위는 사건조사나 심의 과정에서 ‘시장획정’(시장을 명확히 나눠 정함)을 할 때 온·오프라인을 나눠봤다면, 이번엔 소비자 구매행태 등을 고려한 진일보한 판단을 내렸다는 평가다.
물론 ‘뜨거운 감자’였던 CJ올리브영의 시지남용혐의에 대해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않은 것은 아쉽다. 일각에선 ‘면죄부’ 논란과 함께 촘촘하지 못했던 심사보고서의 논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심사관 측이 제시한 ‘시장봉쇄율(경쟁사 차단) 30%룰’, 미국 셔먼법 2조인 ‘독점화 기도’(attempt to monopolize·독점에 이르는 과정)은 시지 남용혐의를 입증하는 주요 논리였다. 다만 시장획정이 전제돼야 의미가 있었다.
학계 관계자는 “시장을 얼마나 봉쇄했는지, 독점화 행보를 보이는지 등을 고려해 시지남용 여부를 판단하는 데 이는 시장획정이 먼저 이뤄져야 가능한 논리”라며 “시장획정을 확실히 하지 못해 결국 CJ올리브영의 시지남용혐의는 판단이 보류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 위반에 대한 판단 보류는 유통업계에서 EB(독점브랜드) 정책을 전면 시행한 후 처음이다. 독과점 폐해를 예방할 경쟁법적 규율의 첫발을 떼려는 심사관의 의지와 온·오프라인 융합이라는 시대상을 반영한 공정위의 판단이 맞물린 것으로 앞으로 공정위의 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열린 결말’인 셈이다.
이번 사건의 심결과는 별개로 10~30대 고객들에게 CJ올리브영은 화장품을 직접 찍어 바를 수 있다는 점에서 화장품 구매를 위한 필수 장소로 인정되는 헬스앤뷰티(H&B) 스토어다. 서민 생활과 밀접한 곳이기도 하다. 중소기업 화장품 브랜드(납품업체) 입장에선 오프라인 판매채널로는 올리브영이 유일하게 남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유통사의 ‘갑질’과 화장품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 후생 저하 등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앞으로도 공정위의 꾸준한 감시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