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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막걸리를 마시면 ‘이게 무슨 맛인가’ 하고 자문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마셨던 ‘입국’을 기반으로 아스파탐, 구연산 등 화학첨가물이 들어간 달고 신 막걸리에 비하면 ‘무(無) 맛’에 가깝기 때문이다. ‘무(無) 맛’의 비법은 ‘무(無) 첨가물’. 다른 첨가물은 모두 배제한 채 ‘쌀’과 ‘누룩’으로만 막걸리를 빚는다.
송명섭 막걸리는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전통주 만들기 ‘무형문화재’ 소유자가 빚은 막걸리다. 주객(酒客) 사이에서 그 명성은 이미 자자하다. 광화문, 대학로 등 서울의 ‘핫 플레이스’에서도 간간이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막걸리 총리’를 자임한 이낙연 총리의 ‘기자단 총리공관 초청’ 막걸리로 선택돼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 2015년에는 ‘KBS 1박2일’에 소개되며 마니아를 넘어 일반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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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4시간을 달려 만난 막걸리 명인, 송명섭(60) 태인합동주조(태인양조장) 대표의 첫 모습은 남달랐다. 그는 대뜸 “술을 취재하러 온 거지 나를 취재하러 온건 아니지 않소? 그러니 술이나 마시면서 얘기합시다. 부족한 내용은 나중에 메일로 드릴께”라는 말로 손님을 반겼다. 어눌한 말투 속에 들어 있는 강단이 강하게 느껴졌다.
자리에 앉은 후 그는 가져올 막걸리가 있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5분 정도가 지났을까, 그는 유통기한이 두 달여 지난 막걸리를 가져왔다. 송 대표는 “오래된 막걸리는 숙성해 거부감 없는 맛을 느낄 수 있다”며 “세 모금을 마시고 차오르는 숨을 느껴보라”고 권했다.
두 달 숙성한 막걸리 맛은 막 나온 그것보다 ‘가벼우면서 어우러진 맛’이었다. 송 대표는 이를 ‘20년 만에 초등학교 친구를 만났지만 어색하지 않은 기분’이라 칭했다. 그는 “와인은 향부터 맡는 순서지만 막걸리는 마신 후 그 맛을 느끼는 게 다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송명섭 막걸리의 유통기한은 단 10일. 그는 “발효식품인 김치를 처음 먹을 때는 아삭하고 ‘어정뜬 맛’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거부감 없는 신김치로 변한다”며 “술도 마찬가지다. 발효 음식은 처음과 끝이 같으면 안된다”며 유통기한이 짧을 수밖에 없는 ‘상품으로서의 막걸리’의 한계를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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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제부터’, ‘얼마나’ 라는 질문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막걸리 생산량이 얼마나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송 대표는 성질을 버럭냈다. 그는 “내 막걸리는 시장에서도 프리미엄으로 평가받는다”며 “하지만 대형 업체들은 ‘고작 저 정도 생산하는 주제에’라고 비아냥대 생산량을 밝히는 게 꺼려진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부터 막걸리를 만들었느냐’라는 질문도 말이 안 된다고 큰소리를 쳤다. 송 대표는 “주류 제조 면허는 일제강점기에서야 나온 개념”이라며 “모양새는 시대별로 다르지만 ‘언제부터 김장 김치를 담갔느냐는 질문은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송명섭 막걸리는 무 첨가물 막걸리의 대명사지만 지금의 명성을 얻기 까지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송 대표 역시 막걸리에 아스파탐 등 첨가물을 넣었다. 한 때 직원은 18명에 달했다. 어느 날 송 대표는 부인이 조미료 없이 김치를 담그는 것을 보고 “그렇게 하면 맛이 없다”고 핀잔을 줬다. 부인은 “몸에 좋은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내 식구가 먹는 음식에 그럴 수 없다”고 되받아쳤다.
송 대표는 순간 충격을 받았다. ‘항상 술을 음식이라 생각하고 만들었지만 해로울 수도 있는 화학첨가물을 알면서도 넣었다’라는 자책감 때문이다. 이후 송 대표는 본연 그대로의 막걸리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심한 맛은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매출은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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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화학첨가물을 천명한 터라 다시 화학첨가물을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사업을 접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양조장을 쉽사리 닫을 수 없었다. 대신 송 대표는 25t 덤프트럭을 구입해 운전기사로 변신했다. 그는 그렇게 8년간 양조장 사장과 트럭기사로 ‘투 잡’을 뛰었다.
송 대표는 지난 시기를 되새기며 “‘돈’이 문제가 아니라 ‘명예’가 문제였다”면서 “몸보다 정신적으로 더 힘들었던 시기”라고 설명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의 진심이 점차 통했다는 것. 특히 젊은 층을 위주로 송명섭 막걸리에 대한 입소문이 돌았다. 운도 따라줬다. 2003년 그는 전통 대나무술인 ‘죽력고’ 제조법으로 무형문화재 자리에 올랐다. 송 대표는 지정 3개월 만에 트럭을 처분하고 전통술 만들기에만 집중한다.
송 대표는 “하지만 아스파탐을 넣던 옛날에 비해 판매량이 줄어든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송명섭 막걸리는 송 대표와 부인, 그리고 직원 1명 모두 셋이서 운영한다. 그가 어려운 시기를 버틸 수 있던 또 다른 이유는 ‘자작농’이라는 데 있다. 송 대표 양조장 근처에는 조상 때부터 짓던 약 6만㎡(1만8000평)에 달하는 논이 펼쳐져 있다. 그는 “쌀 한 가마니(80㎏)를 팔면 17만원 정도 밖에 못 받는다”며 “하지만 막걸리로 제조하면 40만원의 가치가 있다”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밝혔다.
막걸리 장인이 보는 막걸리의 현재는 어떨까. 송 대표는 “젊은 사람들은 현재 충분히 막걸리 애용하고 자랑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오히려 기성세대 특히 기득권 층에게 불만을 표했다. 송 대표는 “정치권 혹은 재계에서 만찬 때 와인이나 위스키를 만찬주로 사용하는 것이 전통주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못마땅하다”고 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옷은 누가 뭐래도 한복”이라면서 “대통령부터 그 국가에 맞는 의상을 입고 음식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송명섭 대표는
전북 정읍 출생으로 그의 집은 대대로 양조장을 해왔다. 유년시절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고등학교 재학 중 편찮은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귀향했다. 이후 40여년간 농사를 지으며 양조장을 운영해왔다. 2003년 대나무술인 ‘죽력고’ 제조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3호로 지정됐다. 2013년부터 한국막걸리협회 이사직을 수행 중이다.
용어설명
누룩 : 누룩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술을 만들 때 이용하는 발효제의 일종이다. 쌀, 밀 등 곡물을 이용한다. 주로 곡물양조주 제작에 쓰인다. 밀과 지푸라기와 섞어서 발효한다. 초산균이 먼저 번식해 잡균이 제거된 후 누룩곰팡이가 번식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효모가 다양한 만큼 맛도 다채롭다. 하지만 균의 통제가 어려워 소규모 막걸리 제조 등에 적합하다.
입국 : 일본에서 술을 빚을 때 일반적으로 쓰는 누룩 형태다. 곡물에 당화효소 생산 곰팡이를 배양한 것을 뜻한다. 전통누룩에 비해 pH를 낮춤으로써 잡균 오염을 방지하고 술을 안정적으로 발효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대규모 막걸리 제조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