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모성보호 안되는 모성보호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노동TALK]

서대웅 기자I 2024.03.16 08:50:53
[이데일리 서대웅 기자] “부모가 함께 일·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실질적 사용 여건을 조성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4일 주요 기업 인사노무책임자들에게 한 말입니다. 당시 간담회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비롯해 삼성, 현대차, SK, LG, 포스코, 롯데 등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을 비롯해 종근당, 삼천리, 풍산 등 업종과 규모를 망라해 20곳 이상이 참석했습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14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주요기업 CHO(최고인사책임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저는 여기서 ‘부모가 함께’에 주목했습니다. 육아를 남성과 여성이 ‘함께’ 할 수 있도록 기업이 앞장서달라는 것이죠. 일·육아 환경 조성은 법과 제도만으로 구축하기엔 한계가 있으니 기업도 신경써달라는 부탁으로 이해했습니다.

정부의 일·육아 지원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에 기반합니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 일·육아와 관련한 많은 제도적 장치의 법적 근거를 두고 있죠. 이 법 자체가 근로자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해 국민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제1조)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은 육아는 여성이 하고 남성은 돕는 것이라는 시각에 기반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법에서 ‘일·가정 양립’과 따라다니는 것이 ‘모성보호’입니다. 그리고 모성보호는 ‘여성 근로자의’라는 말의 수식을 받죠. 이 장관도 이날 간담회에서 “정부는 모성보호 지원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니만큼”이라고 했습니다. 그 뒤에 “기업에서도 일·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사용 여건을 조성해달라”고 했죠.

모성을 보호하자는 데 뭐가 문제라는 거냐, 물을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 말 자체가 육아는 여성이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라는 시각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성보호를 위해 남성은 돕는 존재가 돼야 하는 것이죠. ‘배우자 출산휴가’(법 제18조의2)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출산한 배우자를 ‘돕기 위해’ 휴가를 쓰라는 조항입니다. 육아는 이 장관 말처럼 ‘부모가 함께’ 하는 것이라면 출산휴가 앞에 굳이 배우자를 붙일 이유가 있었을까요.

모성보호 조문이 들어간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지금도 여성은 출산과 육아로 경력단절이 발생하고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법으로까지 정했을 겁니다. 헌법도 ‘여자의 근로’를 특별히 보호해야 한다(제32조4항)고 규정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 저는 모성보호라는 말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논쟁적일 수 있겠으나 모성을 보호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이 말은 이제 폐기돼야 한다고 봅니다.

지난 14일 현장엔 여성은 고용부에서 나온 담당 과장과 실무자 2명이 전부였습니다. 기업과 고용부 고위 관계자들이 앉는 회의 테이블은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남성들로 채워졌죠. 육아는 포기하며 이 자리에 올라왔을 법한 이들에게 ‘부모가 함께’ 육아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라는 이 장관의 ‘부탁’은 아이러니했습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기업들이 솔선수범해 남성은 육아를 돕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육아는 같이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