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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경 네덜란드 연기금 운용공사(APG) 아시아·태평양 지배구조 대표는 11일 서울 소공동 플라자호텔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다른 나라는 연기금이 일상적인 투자 활동으로서 기업에 경영 개선을 요구할 수 있지만, 국민연금은 ‘5%룰’ 탓에 불가능하다”며 “국민연금이 5% 룰 때문에 손발이 묶여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가 언급한 5% 룰은 자본시장법 147조에 근거한다. 이에 따라 상장회사 지분 5%를 보유하면 금융당국에 반드시 보고하고 사전에 `회사 경영에 참여하려는 것인지 단순 투자인지`를 포함한 보유 목적을 밝혀야 한다. 적대적 인수합병에서 기업을 보호하려는 장치다.
그러나 이로써 주주권 행사가 위축된다는 게 박 대표 지적이다. 단순 투자로 보유 목적을 밝힌 이상 배당 확대 외에 주주제안을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국민연금이 기업에 회계처리 관련한 부분을 문의하는 것도 경영 참여로 볼 여지가 있다. 물론 자본시장법 시행령에서 금지한 경영참여 행위 10가지에 명시적으로 해당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행령은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에 해석하기 나름이다. `걸면 걸린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다른 나라도 5%룰이 있고, 지분이 변동되면 공시가 이뤄지도록 돼 있지만 이렇게 사전에 경영참여냐, 단순 투자냐고 묻지 않는다”며 “경영 참여로 보는 카테고리가 너무 많아 다른 나라에선 일상적인 투자 활동인데 우리나라에선 경영 참여로 본다”고 말했다. 경영참여로 투자 목적을 공시할 경우 지분 변동 후 5영업일 이내에 공시해야 된다. 투자 전략이 노출돼 활동을 제약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드러내놓고 적극적으로 주주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덩치 큰 형(연기금)이 나서서 진중하게 방향을 정해주면 동생(자산운용사)도 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네덜란드에선 연기금이 투자한 주요 회사 주총을 안 가면 사회적으로 상당한 문제가 되는데 한국에서는 국민연금이 주총에 간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연기금이 행동주의 펀드에 자금을 위탁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네덜란드 연기금도 헤지펀드에 돈을 맡기고 일본 공적연금펀드(GPIF)는 다양성을 위해 일부러 행동주의 펀드에 자금을 맡긴다”며 “(일본은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에 자금을 위탁하는데) 한국 같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하자 `연기금이 기업을 좌우할 것`이라는 연금 사회주의 우려가 일었다. 박 대표는 “모든 걸 이념적으로 해석해 진흙탕을 만들어 놓고, 나쁘다니 거기서 빠져나오자는 식”이라며 “쓸떼없는 얘기 할 시간에 차라리 본질에 집중하는 게 낫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