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함정선 정태선기자] 기업과 직원을 바라보는 재벌가와 이익집단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기업을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연초부터 재벌가 2~3세들의 도덕성 논란에 불씨를 지핀 사건으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대한항공 회항 사건은 2014년 12월 5일 뉴욕의 존 F. 케네디 공항에서 탑승구를 떠나 이륙을 준비 중이던 항공기를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탑승구로 되돌린 사건이다.
기내 서비스에 불만을 품은 부사장의 항의로 일어난 사건으로 이른바 ‘땅콩회항’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재벌의 ‘갑질’로 사회적인 공분을 샀다. 조 전 부사장은 1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감형돼 풀려났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 회장은 ‘손가락 경영’으로 비난을 받았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 7월 말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롯데홀딩스의 이사진에 대한 해임을 손가락 하나로 지시했다. 기업의 이사진을 법과 절차를 무시한 채 손가락 하나로 해임 하려한 신 총괄회장의 모습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재계 5위의 롯데그룹이 총수의 손가락 하나로 좌우된다는 사실은 롯데그룹의 위상을 크게 실추시켰다.
뿐만 아니다. 최근 몇년간 기업 총수의 횡령, 배임 사건도 줄을 이었다. 최태원 SK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이 횡령과 배임으로 재판을 받았다. 실형을 받은 총수도 있다. 횡령과 배임 혐의를 받는 총수 대부분이 “그룹을 위한 결정”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들이 회삿돈을 자신의 돈처럼 쉽게 생각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고유의 ‘재벌’ 문화와 정당한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경영승계 관습이 이같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재계 전반적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기업의 신사업에 재벌가 젊은 자제들이 속속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금수저·은수저·흙수저 등의 ‘수저 계급론’이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데서 보듯 상대적으로 손쉽게 경영권을 승계하거나 부를 거머쥔 이들에 대한 평가가 곱지 않다. 재벌가의 비뚤어진 오너십과 특권 의식에서 비롯된 각종 사건·사고가 계속 이어진다면 내년에도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재벌개혁’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경제개혁연구소가 50명의 전문가집단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가의 56%가 현재와 같은 경영권 승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다. 단순히 창업자 가문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경영자의 길에 들어서다 보니 경영 능력은 물론 검증되지 않은 도덕적인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영국의 경제경영연구센터는 한국이 2030년 세계 경제 4위의 강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재벌과 이익집단들의 법과 절차를 무시한 경영이 지속될 경우 이같은 전망이 현실이 되기는 힘들다는 비판도 거세다.
예종석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기득권들이 자신들이 받은 혜택을 잊은 채 종업원 등을 막 대하거나 경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결국 재벌도 시장으로부터 돈을 버는데 시장이 곧 소비자고 소비자가 국민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