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20일 친구들 만나러 신촌의 한 여대 앞에 다녀온 이승연(24·유학준비생)씨는 집에 오자마자 수선집으로 달려갔다. 재작년에 산 미니스커트 밑단을 5㎝쯤 줄이기 위해서였다.
“카페 창가에 앉아 있는데 엉덩이만 겨우 가리는 초미니 스커트가 5분마다 눈앞에 지나가는 거예요. 무릎 바로 위까지 오는 제 스커트는 너무 답답해 보이더라고요.”
2006년 봄, 보기에도 아찔한 스커트가 거리를 점령했다. 그냥 ‘미니’가 아니다. 전체 길이 25㎝ 안팎의 ‘초미니’다.
10년 전 미니스커트에 비해 10㎝는 짧아진 이런 초미니는 요즘 인터넷 쇼핑몰 ‘G마켓’이나 경매사이트 ‘옥션’에서 하루 평균 2500~3000벌씩 팔려 나간다. 전체 여성의류의 30%에 해당하는 수치다.
현대백화점에서 10년 넘게 여성패션을 담당해 온 김석주 바이어는 “미니스커트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올해 ‘더 이상 짧아질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 것 같다”며 “몇 년 전만 해도 초미니가 ‘다리 미인’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제는 누구나 입는 대중적인 아이템이 됐다”고 말했다.
초미니 열풍을 주도하는 것은 스무살 안팎의 젊은 여성들. 옥션 CM실 의류담당 박정원 차장은 “초미니 구매자의 70%가 10대 후반~20대 초반”이라며 “올 봄에는 레이스나 주름을 넣어 귀여운 느낌을 주는 ‘스쿨룩’ 스타일이 특히 인기”라고 말했다.
초미니와 함께 입는 니삭스(무릎까지 오는 긴 양말), 레깅스(스커트 밑에 입는 쫄바지), 망사 스타킹, 힙워머(보온용 속바지) 등도 덩달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스테퍼(계단 밟기식 운동기구), 다리 마사지기, 슬림패치(허벅지에 붙여 지방을 연소시키는 제품), 제모(除毛)용품, 보디펄(몸을 반짝이게 하는 화장품) 등 하체관리용품도 초미니 열풍에 힘입어 작년의 2~3배로 매출이 뛰었다.
왜 초미니일까. ‘불황일수록 미니스커트가 유행한다’ ‘겨울이 추울수록 이듬해 봄 스커트가 짧아진다’ ‘스커트가 짧아지면 주가가 오른다’ 등 미니스커트를 둘러싼 사회·경제학적 분석은 다양하다.
그러나 21일 서울 역삼동에서 만난 초미니족 공민경(26)씨는 그저 “자기만족”이라고 했다. “한번 입어보고 싶었어요. 요즘은 몸매가 빼어나지 않아도 부담 없이 입는 분위기라서 한 벌 장만했는데 섹시해진 것 같아서 왠지 신나요.” 친구들 사이에서 ‘초미니 마니아’로 통하는 대학생 박신혜(23)씨는 “초미니에 망사 스타킹 신고 7㎝ 하이힐 신으면 다리가 실제보다 10㎝ 이상 길고 날씬해 보이는 ‘착시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경인교육대학교 이윤정 교수는 “종합주가지수와 빈곤층이 동시에 증가하는 경제상황인 만큼, 호·불황 여부보다는 차라리 연예인들 영향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대문 일대와 인터넷 쇼핑몰에 초미니와 핫팬츠가 깔린 시기는 이효리, 고소영, 김태희 등이 유사한 의상을 선보인 시기와 맞물린다.
“초미니족 때문에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겠다”며 불편을 호소하는 남성들도 적지 않다. 얼마 전 대구 모 대학 게시판엔 도서관에 앉아 있는 여학생의 스커트 속을 도촬(盜撮·도둑촬영)한 사진이 올라와 여학생회가 들고 일어나는 소동도 있었다.
서울 지하철경찰대의 이봉석 경장은 “명동역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휴대전화로 스커트 속만 찍는 상습범도 있다”며 “공공장소에선 스스로 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