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옷 대신 30만원짜리 향수 샀다[사(Buy)는 게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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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정 기자I 2026.03.08 09:29:25

2주 입을 봄옷 대신 명품 향기
사계절 내내 쓰는 합리적 사치

[이데일리 신수정 기자] 사(Buy)는 게 뭔지:사는(Live) 게 팍팍할 때면, 우리는 무언가를 삽니다(Buy). 경제지 기자가 영수증 뒤에 숨겨진 우리의 마음을 읽어드립니다. 다이소 품절 대란부터 무신사 랭킹 1위까지. 도대체 남들은 뭘 사고, 왜 열광할까요? 물건의 스펙보다는 ‘그걸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장바구니를 보면 시대가 보이고, 결제 내역을 보면 내 마음이 보이니까요. 소비로 세상을 읽는 시간, <사(Buy)는 게 뭔지>입니다.

진열된 향수 (사진=뉴시스)
완연한 봄기운에 두꺼운 패딩을 옷장에 집어넣는 3월이다. 예전 같으면 화사한 봄옷을 장만하느라 백화점 의류 매장이 북적일 시기지만, 최근 2030 세대의 쇼핑 카트에서 트렌치코트나 얇은 봄여름용 재킷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들이 봄옷 결제를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히 옷값이 비싸서가 아니다. 뚜렷했던 사계절이 사라지고 봄과 가을이 스치듯 짧아지면서, 간절기 의류의 효용성이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큰맘 먹고 30만원짜리 트렌치코트를 사봤자 고작 2주 남짓 입으면 곧바로 반팔을 꺼내야 하는 찜통더위가 찾아온다. 기후 변화가 2030 세대의 옷장 지도마저 바꿔놓은 셈이다.

옷값에 쓸 돈을 굳힌 이들의 발걸음이 최종적으로 향하는 곳은 1층 화장품 매장, 그중에서도 고가의 니치 향수 코너다. 스마트폰 쇼핑 앱 결제 내역을 들여다보면 30만원이라는 결제 금액 옆에 봄 재킷 대신 프랑스 수입 브랜드의 50밀리리터짜리 향수 이름이 적혀있다. 손바닥만 한 유리병에 수십만원을 태우는 이 소비는 지금 유통가의 가장 뜨거운 트렌드이자 거대한 산업이 됐다. 실제로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국내 향수 시장은 2019년 약 6000억원에서 2022년 약 8000억원으로 커졌고 2025년에는 1조 800억원 안팎으로 추산·전망되는 수준에 도달했다.

봄옷을 포기하고 향수 시장의 1조원 돌파를 견인하는 현상 이면에는 2030 세대 특유의 치밀하고 합리적인 가성비 계산법이 자리 잡고 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봄옷의 유통기한은 벼락처럼 짧아졌지만, 향수는 계절과 날씨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 30만원짜리 향수는 영하 10도의 한파에도, 영상 35도의 폭염에도 1년 365일 내내 매일 뿌릴 수 있다. 옷처럼 유행을 심하게 타지도 않고 살이 찌거나 빠져서 핏이 망가질 일도 없다. 초기 비용은 비싸 보이지만 매일의 일상에서 뽑아낼 수 있는 사용 빈도와 만족감을 따져보면, 향수야말로 사계절 내내 최고의 효용을 자랑하는 가장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투자처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러한 소비 셈법은 불황기에 립스틱만 잘 팔린다는 전통적인 경제학의 립스틱 효과와는 결이 다르다. 돈이 없어서 싼 것을 사는 게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투자 대비 효율이 가장 확실한 곳으로 자본을 영리하게 재배치한 결과다. 짧아진 봄날씨 탓에 며칠 입지도 못하고 옷장에 박힐 트렌치코트를 사는 것은 이들에게 명백한 자원 낭비다. 차라리 그 돈을 한 병의 고급스러운 향기에 집중 투자해, 매일 아침 손목에 명품을 두르는 확실한 만족감을 챙기겠다는 똑똑한 방어 기제인 것이다.

당장 다음 주 벚꽃이 만개하면 거리에는 작년에 입던 평범한 옷을 걸친 채, 올해 가장 유행하는 세련된 향기를 풍기며 걷는 청춘들로 가득할 것이다. 30만원이 찍힌 향수 영수증은 결코 봄바람이 불어넣은 철없는 허세나 충동구매가 아니다. 그것은 변덕스러운 날씨와 팍팍한 경제 상황 속에서도 나만의 확실한 시그니처를 구축하고, 일상의 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우리 시대의 지극히 합리적이고 향기로운 생존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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