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은 맨 앞, 공연장은 맨 뒤…찬밥자리는 ‘장애인석’

이수빈 기자I 2022.06.29 06:44:24

영화관 장애인석 10석 중 7석은 맨 앞줄에
시야확보 어려워 관람 불편…“선택 여지 없어”
업계 측 “건물 구조상 불가피”
“앞·중간·뒤 자리 선택지 늘려야”

[이데일리 이수빈 기자] 뇌병변장애가 있어 휠체어를 타는 유진우(27)씨는 영화를 보러 갈 때마다 서울 왕십리에 있는 영화관을 찾는다. 유씨가 아는 서울시내 영화관 중 그곳만 장애인석이 뒤쪽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씨는 “대부분은 맨 앞자리에 장애인석이 있어서 영화를 보면 화면도 다 보이지 않고 고개를 한껏 젖혀야만 해 무척 힘들다”고 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인 정모(44)씨는 최근 아내와 영화관에 갔지만 결국 ‘홀로’ 영화를 봤다. 장애인석과 보조인석이 영화관 가장 앞에 놓였는데, 영화를 보는 데에 불편을 호소하던 아내가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서다.

지난 4월 CGV 수유점을 찾은 정모씨가 영화관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힌 모습이다.(사진=독자 제공)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 후 공연예술계가 활기를 되찾고 있지만 장애인들은 여전히 영화관, 공연장을 꺼리고 있다. 장애인의 편의가 나아지지 않고 있어서다. 영화관, 공연장 모두 일반 관객들은 꺼리는 ‘비선호’ 구역에 장애인석을 두고 구색맞추기한단 불만이 많다.

지난해 말 영화진흥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3대 영화관(CJ 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3004개 상영관의 장애인석은 10석 중 7석이 맨 앞줄에 마련돼 있다. 시야 확보가 어려운 자리지만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은 좌석 선택의 여지가 없다. 유씨는 “좌석을 최소 앞, 뒤, 중간 세 개는 마련해줘야지 지금으로선 좌석 선택권이 없는 것과 같다”며 “현재의 장애인석은 법에 규정된 것들을 대충 흉내만 낸 것 같다”고 꼬집었다.

보건복지부가 2018년 8월 공포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 편의증진 보장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따르면 영화관의 장애인 등을 위한 관람석은 중간 줄 또는 제일 뒷줄에 마련해야 한다. 시야 확보가 가능할 때만 제일 앞줄에 설치할 수 있다. 하지만 개정안 시행 이후 개관한 영화관들도 60% 이상이 장애인석을 맨 앞자리에 배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전국 영화관 장애인 관람석 배치 현황(출처=영화진흥위원회, 강선우 의원실 재가공)
공연장도 비슷하다. ‘잘 보이는’ 중간이나 맨 앞줄에 장애인석을 둬야 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만 제일 뒷쪽에 둘 수 있지만 현실은 반대다. 전동휠체어 이용자 A씨는 “대부분의 공연장 휠체어석은 객석 맨 뒷줄 사이드에 있다”며 “드물게 휠체어석이 1열에 있는 한 공연장은 휠체어 때문에 뒷자리 비장애인 관객 시야가 가린다고 해서 전동휠체어에서 내려 일반 의자에 앉아야 관람할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B씨는 “공연장, 콘서트장은 앞자리가 관람하기 좋은데 휠체어석은 뒤에 있고, 영화관은 차라리 뒷좌석이 관람하기 나은데 대부분 맨 앞자리에서 봐야 한다”며 “장애인석 할인을 원하는 게 아니다, 제값을 주고 제대로 보고 싶다”고 호소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도 일반석에 앉아 영화·공연을 볼 수는 있다. C씨는 국립극단의 인기작 ‘엔젤스 인 아메리카’를 보러 갔을 당시 2층의 휠체어석이 잘 보이지 않아 일반석으로 예매했다. 이때 극단 관계자는 “불이 나도, 다른 재난상황이 닥쳐도 우리는 당신을 대피시켜줄 수 없다”는 점을 미리 공지한 뒤 C의 착석을 도왔다고 한다. C씨는 “잘 보이지 않는 자리여도 반드시 장애인석에 앉으라는 얘기”라고 했다.

업계 측은 ‘공간상의 제약’을 이유로 든다. 이미 구축된 상영관·공연장 구조를 바꾸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김남진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출입구나 동선을 고려해 장애인석을 설치했다면 당장 위치를 바꾸는 건 어렵겠지만 새로 짓거나 리모델링을 하는 경우엔 영화관은 중간 또는 맨 뒤, 공연장은 중간 또는 맨 앞에 장애인석을 마련하도록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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