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국제통’ 은행장 시대가 도래했다. 이번달 말 주요 금융지주사의 정기 주주총회가 일제히 열리는 가운데 글로벌 역량을 주특기로 하는 신임 최고경영자(CEO)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진옥동 신한은행장 내정자와 지성규 KEB하나은행장 내정자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에도 ‘새 얼굴’이 대거 등장하는 건 금융권의 위기감이 반영돼 있다는 방증이다. 더이상 천수답식(式) 영업만으로는 미래를 모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한 진옥동 26일, 하나 지성규 내일 취임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진옥동 내정자는 오는 26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에 위치한 신한은행 본점에서 열리는 주총에서 신임 은행장으로 공식 선임된다. 그는 선임 직후 기자간담회를 통해 포부를 밝힌다.
‘초고속 승진’의 대명사인 진 내정자는 은행 커리어 38년 중 절반 가까이를 일본에서 지냈다. 특히 신한은행의 일본 현지 법인(SBJ은행)에서 오사카지점장과 법인장을 잇따라 맡았다. SBJ은행은 일본에서 소매 영업을 하는 유일한 외국계은행이다. 그가 2017년 당시 상무급인 해외법인장에서 부행장보를 건너뛰고 신한은행 부행장으로 곧장 승진한 것도 일본에서 성과를 인정 받았기 때문이다.
신한은행 한 인사는 “진 내정자의 미션은 명확하다”며 “2020 스마트 프로젝트의 핵심인 글로벌 부문을 도약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신한은행의 지난해 해외점포 순이익은 3215억원. 전년(2350억원) 대비 37% 가까이 급성장했다. 국내 은행권에서 최대 규모다. 그럼에도 전체 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 정도다. 이를 내년 이후 20%로 끌어올리겠다는 게 은행 측 설명이다. 이번 기자간담회 때도 글로벌 전략이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새로운 국가에 추가 진출하는 것보다 기존 국가에서 성장성에 집중할 것”이라며 “베트남 등을 중심으로 영업을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신한은행의 지난해 국외 손익 비중을 보면 신한베트남은행이 30%로 가장 높다. 그 뒤를 SBJ은행(20%)과 신한은행중국유한공사(10%)가 잇고 있다.
21일 주총을 통해 CEO 자리에 오르는 지성규 내정자도 주목된다. 그는 공식 취임과 동시에 기자간담회를 통해 사업전략을 드러낼 계획이다. 지 내정자의 역량 역시 글로벌에 방점이 찍힌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홍콩, 베이징 등 세계 금융의 중심지에서 일한 중국통이다. 2014년부터는 하나은행중국유한공사 은행장을 지냈다. 2015년 당시 국내에 앞서 옛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중국 법인 통합이 먼저 이뤄졌는데, 이 과정을 지휘한 이가 지 내정자다.
그가 하나은행의 수장으로 깜짝 발탁된 것도 김정태 회장이 공들이고 있는 글로벌 전략 때문이다. 이른바 2540 전략 목표다. 2025년까지 전체 순이익에서 차지하는 해외 비중을 40%까지 늘리겠다는 것이다. 하나은행 한 관계자는 “2540 전략도 지 내정자의 손을 거친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하나은행의 해외 순이익은 2855억원으로 전년 대비 20%가량 증가했다. 그러나 전체 순이익 대비 비중은 아직 14%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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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승, 해외사업 관련 요직 두루 거쳐
다른 시중은행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손태승 우리은행장의 경영 방점도 글로벌이다. 그는 글로벌사업본부 집행부행장(2015년), 글로벌그룹장(2016년), 글로벌부문장(2017년) 등을 거쳐 우리은행장에 오른 국제통이다. 우리은행의 해외점포 순이익은 최근 3년간 1018억원→1613억원→1985억원으로 급증세다. 국민은행의 지난해 글로벌 순이익은 606억원으로 전년(235억)과 비교해 2.5배 이상 확대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은행이 해외 점포에서 올린 순이익은 9억8300만달러(1조111억원)로 1년 전보다 22.2% 증가했다.
은행권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은 이유가 있다. 좁은 국내에서 경쟁하는 건 성장성의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터넷전문은행 등의 등장으로 기존 은행권의 경쟁 환경은 더 나빠지고 있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은행보험연구실장은 “수익성 개선을 위해서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흥국 진출이 중요하다”며 “새로운 인수합병(M&A) 기회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다만 “신흥국 금융 불안이 현실화한다면 외화자금의 조달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안정적인 조달 방안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