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연기금 집중투표제 확산하나…“대주주 전횡 견제 위해 필요”

박정수 기자I 2018.05.04 06:19:40

사학연금, 국민연금 따라 ''집중투표제'' 세부조항 개정
공무원연금 작년 6월 ''집중투표제'' 찬성 근거 마련
"기업, 주주친화정책 통해 주주를 우군으로 만들어야"

[이데일리 박정수 기자] 국민연금기금이 의결권 행사지침을 개정해 ‘집중투표제’에 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신설하면서 다른 연기금들도 이러한 기류에 따를지 관심이 쏠린다. 특히 최근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이 현대차에 집중투표제 도입을 요구하는 등 지배구조 개편에 복잡하게 얽히고 있어 집중투표제와 관련한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 연기금, 집중투표제 규정 잇따라 개정

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사학연금은 집중투표제 세부 기준 가운데 ‘회사가 집중투표제 배제와 관련해 정당하고 합리적인 사유를 제시할 경우 사안별로 검토한다’는 조항을 삭제할 방침이다. 이는 최근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지침 개정을 고려해서다. 현재 사학연금의 집중투표제 세부 기준은 △정관에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을 삽입하는 경우 반대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을 삭제하는 경우 찬성 △회사가 정당하고 합리적인 사유를 제시할 경우 사안별 검토 등이 있다.

사학연금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사안별 검토 부분을 삭제하면서 우리도 방향을 같이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 3월에 제1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의결권 행사 지침을 개정하면서 집중투표제 시행 규정을 손봤다. 개정 의결권 행사 지침은 집중투표제를 배제하는 안에 반대하고, 집중투표제 배제조항을 삭제하는 안에 찬성한다. 이어 집중투표제로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 주주 가치 증대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사안별로 검토한다는 조항의 원칙이 명확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개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공무원연금은 지난해 6월 ‘정관에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을 삽입하는 안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을 삭제하는 안에 대해서는 찬성한다’고 의결권 지침을 명확히 했다. 공무원연금 관계자는 “정부 정책 방향에 맞춰 집중투표제에 찬성할 수 있도록 근거를 신설했다”며 “이사 선임과 관련해 사안에 따라 균등하게 행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법무부는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투기자본 악용 우려는 기우…대주주 횡포 견제부터”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 시 1주당 1표씩 행사하는 게 아니라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확보해 지지하는 후보 한 사람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는 제도다. 소액주주의 권리강화와 대주주 전횡 견제가 목적이지만 외국계 자본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엘리엇이 현대차에 집중투표제 도입을 요구하면서 이러한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 연기금 관계자는 “최근 정부 정책이나 연기금의 움직임은 기업들이 정관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바로 잡도록 하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엘리엇 등 외국계 자본의 움직임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다는 시각이 있을 수 있으나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며 “국민연금이 주주가치 증대에 이바지하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토록 기본 전제를 깔아놨으며 무조건적으로 찬성하도록 의무화한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다른 연기금 관계자도 “최근 대한항공 사태만 보더라도 대주주들의 전횡이 더욱 기이하다”며 “대주주 견제라는 정책의 방향성은 맞다”고 판단했다. 그는 또 “주주들이 집중투표를 선택해 결정할 수 있다”며 “경영권 방어의 근본적인 해법은 경영진의 건강한 경영에서 비롯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집중투표제에 대해 거부감을 갖기보다는 주주친화적인 정책을 통해 주주들이 경영진에게 우호적인 시각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IB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주주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정책을 펴 우군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연금도 가입자들의 노후보장을 위한 수익률 확보가 우선인 만큼 엘리엇과 현대차 어느 쪽 편에 서서 의결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며 “수익률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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