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 이응노 미공개 드로잉전 1930∼1950s'
해방 전후 민가·낮잠 자는 기생…
드로잉·스케치 400여점 최초 공개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서 3월1일까지
 | 이응노 ‘서울 조선호텔 뒤’. 1952년 4월 6일 환구단이 보이는 서울 조선호텔 뒷풍경을 잡아냈다(사진=가나문화재단). |
|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고암 이응노(1904~1989) 화백은 서화가 염재 송태회로부터 묵화의 기본을 배운다. 열일곱 살이었다. 충남 홍성 선비집안에서 태어난 배경이 영향을 미쳤다. 이윽고 경성으로 올라와선 당대 한학자이자 수묵화의 대가였던 해강 김규진 문하에 들어가 문인화와 서예를 익힌다. 그러곤 스무 살이 되던 1924년에는 제3회 조선미술전람회 사군자부에 ‘청죽’으로 입선했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화했다. 매·난·국·죽의 문인화는 고루한 그림으로 치부되곤 했다. 생계를 위해 간판을 그리며 고민했다. 서구의 근대 회화에 대한 갈증도 생겨났다. 결국 서른 중반에 식솔을 이끌고 일본으로 거처를 옮긴다. 서양화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소소한 풍경에 대한 드로잉과 스케치를 통해 동서양을 합한 자신만의 화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오는 3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고암 이응노 미공개 드로잉전 1930~1950s’는 전시제목 그대로 193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이응노가 그린 드로잉과 스케치 400여점을 한자리서 볼 수 있는 자리다. 이응노가 워낙 다작 작가이긴 했어도 드로잉과 스케치의 존재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해 한 개인 소장가가 전시를 주최한 가나문화재단에 이응노의 작품들을 아카이브화해 달라고 문의를 해오면서 세상에서 빛을 볼 수 있었다. 700여점의 작품 중 이번 전시를 위해 400여점을 추렸다.
‘문자추상’과 ‘인간군상’ 등 이응노의 명성을 세계에 알린 후기 추상작품만 떠올린다면 의아할 수 있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드로잉에선 추상화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이응노의 드로잉과 스케치는 미적인 가치 외에도 1930∼1950년대 당시의 일상과 풍속을 담아 사료적 가치가 높다. 이응노는 사소한 드로잉이라 할지라도 그린 날짜와 장소 등을 대부분 명기했다. 덕분에 1939년 6월 7일 경성 낙원정 맞은편 민가의 생활모습이라든가 1941년 3월 7일 경성 우신회관에서 기생이 낮잠 자는 모습, 같은 해 5월 경성 덕수궁에서 여유를 즐기는 노인의 모습 등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 이응노 ‘경성 덕수궁’. 1941년 덕수궁에서 지팡이를 깔고 앉아 휴식을 즐기는 노인을 그렸다. 작은 갓과 고무신, 깍지 낀 손까지 세심한 묘사가 돋보인다(사진=가나문화재단). |
|
아울러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4월 6일 환구단이 보이는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뒤편의 풍경을 통해 당시 서울 도심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유추해볼 수도 있다. 이응노는 풍경과 사람뿐만 아니라 생선, 국화, 강아지, 비둘기 등 일상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대상들에 애정어린 시선을 담아냈다. 400여점을 둘러보면 시대상과 전경 등이 마치 영화장면처럼 흘러가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또한 평소 끊임없는 관찰과 스케치가 작가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이응노는 1989년 1월 10일 파리의 보인병원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그의 시신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오스카 와일드, 알퐁스 도테, 모딜리아니 등이 묻혀 있는 파리 시립 페르 라세즈 묘지에 안장됐다. 1980년대 중반 프랑스로 귀화한 이응노에 대해 프랑스정부가 예술가로서 예를 표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등 국내 주요 미술관을 비롯해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프랑스국립도서관과 국립모빌리에미술관, 이탈리아의 로마국립현대미술관과 일본의 도쿄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대전에는 그의 이름을 딴 기념미술관이 있다. 입장료 6000원. 02-2075-4488 .
 | 이응노 ‘우시고메구 요초마치’. 일본 도쿄서 살던 1939년에 그린 작품(사진=가나문화재단). |
|
 | 이응노 ‘남산 운동 중’. 1949년 4월 4일 이 화백이 서울 남산에서 운동을 하던 중에 눈에 띈 강아지를 스케치했다(사진=가나문화재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