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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생각]①'불'과 '바람'의 아들…철(鐵)의 연대기

김무연 기자I 2020.04.28 05:45:00

지상 강의 : '인더스토리' 1강 철(鐵)
아시리아 제국의 풀무 발명으로 철기 확산
코코스 용광로 개발로 철강 대량 생산 가능해져
철교의 건설…건축 및 교통 혁명 촉발
미국, 철도, 자동차, 세계대전으로 철강산업 패권자로

‘세상을 올바르게, 세상을 따뜻하게’를 실천하는 경제종합미디어 이데일리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위대한 생각’(THINK GREAT) 대장정을 시작합니다. ‘위대한 생각’은 이데일리와 이데일리의 지식인 서포터스, 오피니언 리더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경제 인문학 토크 콘서트입니다. 우리 시대 ‘지성인’(至成人·men of success)들이 남과 다른 위대한 생각을 발굴하고 제안해 성공에 이르도록 돕겠습니다. ‘위대한 생각’은 이데일리TV에서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방송하며, 강연 내용은 지면으로도 소개합니다.

임규태 박사가 지난 21일 서울 중구 KG타워 하모니홀에서 ‘인더스토리’ 1강 ‘철’ 편을 강의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오늘의 강연 및 지성인

☆ ‘인더스토리’(INDUSTORY)

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의 과거와 현재를 역사·정치·문화·기술·경제 등 복합적인 시선으로 이해하고 이를 통해 미래를 보는 능력을 기른다. 현대 문명의 기반이 된 ‘철(鐵)’과 ‘사(沙·모래)’부터 코로나19 사태로 주목받고 있는 ‘약(藥)’, ‘의(醫)’까지 이 세상 모든 산업의 역사를 다룬다.

☆ 임규태 공학자·교육자·기업가

미국 조지아공대에서 15년간 교수로 재직. 조지아공대 부설 전자설계연구소 부소장,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국제협력 수석고문. 국제 통신표준화 의장. 빅데이터·소프트웨어·게임·블록체인·기후변화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참여.

[총괄기획=최은영 부장, 연출=정윤철 PD, 정리=김무연 기자]“철은 산업의 공기와 같습니다. 산업현장 어디에나 있고, 없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임규태 박사는 이데일리 강연 프로그램 ‘위대한 생각’ ‘인더스토리’(INDUSTORY)편의 첫 주제로 철(鐵)을 선정했다. 철은 인류 문명과 함께 발전하며 인간의 역사, 생활 양식, 예술의 영역까지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사진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에펠탑은 프랑스의 건축가 알렉상드르 귀스타브 에펠이 1889년 완공한 철골 구조물이다. 에펠탑은 건설 당시 프랑스 예술가들로부터 흉물스러운 건조물이라 비판받았다. 에펠탑을 비난하던 예술가들은 에펠탑 2층 식당에서 식사를 즐겼다. 파리에서 유일하게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곳이라는 게 이유다.

그렇게 조롱 받던 에펠탑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등 프랑스 파리를 대표하는 예술 건축물로 자리매김했다. 에펠탑의 오늘은 현대 사회에서 철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프로메테우스


◇ 프로메테우스의 선물, 바람을 만나다

인류는 철을 무기와 농기구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파괴와 생산 두 축으로 삼아 문명을 발전시켰다. 철의 대량 생산 기술이 개발되면서 건축과 교통에도 혁명이 일어 현대에 이르렀다. 임 박사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철기 시대이며 철기 시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철은 지구의 35%를 구성하는 가장 흔한 물질이다. 그러나 인류는 청동기를 거쳐서야 철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지구에 분포한 산화철을 가공하기 위해선 1535도의 높은 열이 필요한데 초창기 인류는 그만한 화력을 만들어 낼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기 인류는 우주에서 낙하한 운석에 딸려온 소량의 철을 사용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운석철을 칼날에 입힌 명검들이 동서양 전설에 등장한다.

인류가 산화철로부터 철을 뽑아낼 수 있었던 계기는 불과 바람의 만남이 가지는 의미를 깨달으면서다. 불에 바람을 집어넣으면 화력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비로소 인류는 철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었다.

고대 제국 히타이트 인들이 철을 최초로 생산했다. 히타이트인들은 수도 하투사 평원에 연중 부는 바람 덕에 높은 화력을 얻을 수 있었다. 하투사에 만들어진 철기 덕분에 히타이트는 주변을 호령하는 강대한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히타이트 인들이 폭풍의 신 ‘테슈브’를 숭배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프로메테우스가 신들의 대장간에서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전달했다는 그리스 신화는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시기를 암시하는지 모른다.

히타이트 뒤를 이어 등장한 아시리아 제국은 인간의 손으로 바람을 일으킬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풀무의 발명이다. 풀무의 발명은 곧 인류가 철기를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이후 철기는 무기로, 농기구로 사용되면서 인류 문명을 발전시켜 나갔다.

1779년 만들어진 콜브룩데일 철교는 교통혁명을 가져왔다.
◇ 철의 대량 생산… 건축·교통 혁명을 이끌다

현대 철강산업은 1709년 영국에서 시작됐다. 당시는 철을 주조하기 위해 목탄으로 화력을 얻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나무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영국으로서는 화력의 주 재료였던 목탄 수급에 한계를 맞았다.

영국의 철강업자 에이브러햄 다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석탄을 가공한 코크스를 사용하는 용광로를 개발했다. 코크스는 목탄보다 화력과 지속력이 강해 철을 생산하기 용이했다.

코크스 용광로 개발로 철은 대량생산 시기를 맞이했다. 철강의 대량 생산은 철이 필요한 산업들을 가파르게 성장시켰고 이에 따라 철 수요가 늘어나 철강 산업이 융성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철의 대량생산은 건축의 혁신을 몰고 왔다. 철공소에서 철골을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대형 구조물을 짓는 것이 가능해졌다. 1779년 만들어진 콜브룩데일 철교는 이와 같은 조립 방식으로 건설한 세계 최초의 철교다.

철교의 건설은 교통혁명이라는 나비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철교의 건설로 강도 육로처럼 오갈 수 있게 되면서 철도산업과 철도 서비스가 시작됐다. 임 박사는 “콜브룩데일 철교는 건축혁명 뿐만 아니라 교통혁명을 가져왔다”라면서 “이 다리가 산업의 역사를 바꿨다는 것은 과언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철의 대량 생산은 제국주의의 확장으로도 이어졌다. 영국 동인도회사는 세계 최초의 철선인 ‘네메시스 호’를 이용해 전 세계를 누볐다. 네메시스 호는 청나라와의 아편전쟁에도 이름을 올리는 등 제국주의의 첨병 역할을 하게 된다.

철선으로 식민지를 개척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원료를 본국으로 조달하기 위해 식민지에 철도를 깔았다. 식민지에서 원주민 또는 경쟁자와 전투를 위해 무기도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제국주의의 팽창과 함께 철의 수요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에이브러햄 다비가 발명한 코크스 용광로.


◇ 자동차와 세계대전으로 철강 패권 거머쥔 미국

1885년 영국에서 다시 한 번 철강 산업의 도약이 이뤄졌다. 헨리 베세머가 용광로에서 나온 선철에 공기를 주입해 강철을 만드는 ‘베세머 프로세스’를 완성한 것. 이에 따라 순도 높은 강철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임 박사는 이를 가리켜 ‘현대 철강 산업의 완성’이라고 명명했다. 강철을 손쉽게 얻음으로써 무기의 질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고층의 마천루가 세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윌리엄 켈리가 베세머와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제강법으로 본격적인 강철 생산에 들어갔다. 당시 미국은 중부와 서부를 잇는 대규모 철도 공사로 철의 수요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던 시기였다. 철도에 투자해 부를 축적한 앤드루 카네기는 제철 산업의 중요성을 꿰뚫어 보고 에드가 톰슨 철강을 인수해 카네기 철강 신화를 창조한다.

1908년 자동차 회사 포드가 분업을 통해 모델-T를 대량 제작하면서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가 중산층이면 누구나 사용하는 필수품이 됐다. 자동차 시장의 성장으로 철강 수요는 다시 한 번 날개를 달았다.

1,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미국의 철강 패권은 더욱 공고해졌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은 먼로주의(외교상의 불간섭주의)를 주장하며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다량의 무기를 유럽에 팔아 부를 축적했다. 무기 제작으로 철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다. 미국은 2차 대전에서도 무기 대여법을 제정해 연합군과 소련에 무제한으로 무기를 공급했다. 무기에 필요한 막대한 철강을 생산하며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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