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은 690만원. 세탁기 한 대 가격으로는 비싸 보였지만 매장 직원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LG전자 매장 관계자는 시그니처가 초(超)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프로모션을 더하면 590만원까지 할인돼 시그니처 제품 중에서는 가격 접근성이 높다”며 “입소문이 나면서 주문량이 급격히 쌓이고 있어 지금 주문하면 다음달 초중순쯤 제품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근래 몇 년간 나온 가전 가운데 관심이 가장 높다고 한다.
바로 옆 삼성전자 매장은 갤럭시S24 같은 모바일 제품보다 ‘비스포크 AI 콤보’ 세탁건조기를 전면에 내걸고 마케팅을 하고 있었다. 여러 사은품 등을 더한 프로모션 가격은 455만원. 각종 할인을 받으면 300만원 후반대까지 살 수 있다고 한다. 한 직원은 “주말에는 저희 매장에서만 하루 10대 넘게 팔린다”며 “바로 다음주쯤 제품을 받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가격 경쟁력과 빠른 배송을 앞세워 세탁건조기 시장을 선점하려는 것으로 읽힌다. 현장 관계자는 “단연 올해 주력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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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만에 3000대 넘게 팔렸다
침체했던 가전시장이 일체형 세탁건조기 덕에 연초부터 들썩이고 있다. 세탁기와 건조기를 세로로 쌓을 필요가 없어 다용도실 공간에 숨통을 트일 수 있는 데다 젖은 세탁물을 꺼내 세탁기 위의 건조기로 옮기는 번거로움을 없앴다는 점에서, 모처럼 등장한 ‘혁신 가전’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난달 24일 출시한 비스포크 AI 콤보는 지난 4일까지 열흘 만에 3000대 이상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루 300대 안팎 꾸준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LG 시그니처 세탁건조기 역시 당초 내부 예상보다 판매량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LG전자는 다음달 삼성전자와 비슷한 400만원 초중반대의 오브제 브랜드 제품을 출시할 예정인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가전시장 정체를 반전시킬 수 있는 게임체인저 같은 제품”이라고 했다.
세탁건조기가 출시와 동시에 주목 받는 것은 그 혁신성 때문이다. 10여년 전 나왔던 세탁건조기는 뜨거운 열로 옷을 말리는 히터 방식이어서 건조 과정에서 옷감이 많이 상했고,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외면 받았다. 그런데 신제품은 옷감 보호에 특화한 인버터 히트펌프 방식을 적용하면서 건조 문제를 해결했다. 업계에 따르면 세탁기 신규 판매 규모는 연 150만대 내외다. 최근 판매 현장 기류를 보면 머지않아 세탁건조기가 관련 시장을 잠식할 수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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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부터 삼성·LG 전쟁 가속화
그동안 가전 혁신을 주로 이끌었던 곳은 LG전자다. 2011년 의류관리기 ‘스타일러’를 처음 출시하며 존재하지 않던 시장을 만든 게 대표적이다. 세탁건조기 역시 LG전자가 2016년 인버터 히트펌프 방식의 건조기를 히트 치면서 가능했다는 평가다. 회사 관계자는 “이번에 세탁건조기만을 위한 인버터 히트펌프 건조 모듈까지 새로 개발했다”고 말했다. 내부 드럼의 회전 속도를 세탁물의 의류 재질에 맞게 알아서 조절하는 인공지능(AI) DD모터도 주요 강점으로 꼽힌다.
다만 여기에 삼성전자가 혁신 가전을 동시에 내놓으며 맞불을 놓았던 전례는 많지 않다. 이번 세탁건조기 전쟁이 관심을 모으는 또 다른 이유다. 삼성전자는 한종희 부회장(대표이사 겸 DX부문장)이 생활가전사업부를 전담하면서 가전 제품에 더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삼성전자는 내부적으로 ‘가전은 LG’ 인식을 깨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그 선봉에 세탁건조기를 내세운 것이다. 25㎏ 드럼세탁기와 15㎏ 인버터 히트펌프 건조기를 하나로 합친 제품이 300만원대라면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삼성스토어의 한 관계자는 “현재 매장 전시는 백화점 위주이고 차차 삼성스토어에 깔리고 있다”며 “갈수록 판매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때아닌 혁신 가전 전쟁에 가전업계는 반색하고 있다. 업계 한 인사는 “TV, 세탁기, 냉장고 등의 수요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만연했는데, 모처럼 수요를 자극할 만한 제품이 나왔다”며 “LG전자가 400만원대 제품을 내놓는 다음달부터 경쟁은 가속화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