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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강원도 최전방 현장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비무장지대(DMZ) 내에 위치한 우리 군 관측소(OP)에서 내려다 본 이른바 ‘단장의 능선’ 전적지는 그 지세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가팔랐다. 걸어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힘든 이곳에서 전투를 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단장의 능선은 유엔군을 중심으로 한 아군과 북한군이 1951년 9월 12일부터 10월 15일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당시 종군기자였던 스탠 카터가 부상병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는 고통에 찬 비명을 듣고 ‘단장의 능선(Heart Break Ridge)’이란 명칭을 붙여 보도함으로써 불리게 된 이름이다.
◇3년 전쟁 중 2년여 동안 DMZ 일대서 혈투
6·25 전쟁 발발 이후 1년 쯤 지난 1951년 7월 10일 유엔군과 북·중 연합군은 개성에서 첫 정전회담을 연다. 전쟁을 멈추기 위한 휴전을 위한 협상을 시작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전장 상황은 오히려 더 격렬해졌다. 협상 전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고지전이 이어진 탓이다. 이에 따라 3년의 전쟁기간 동안 2년여의 전투가 38선 인근에서 이뤄졌다. 이 때문에 DMZ 인근 대암산 일대와 수리봉 등지에선 아직도 유해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고 안내 장교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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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서부 전선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는 이른바 ‘백마고지’ 전투다. 백마고지라는 이름은 작전 기간 중 포격에 의해 수목이 다 쓰러져 버리고 난 후의 형상이 누워있는 백마처럼 보였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국군 제9보병사단과 중공군 제38군 3개 사단이 전력을 다해 쟁탈전을 벌인 이 전투에서 중공군은 1만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우리 9사단에서도 35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발사된 포탄 수는 아군 21만9954발, 적군 5만5000발 등으로 알려져 있다. 12차례의 공방전으로 24번이나 주인이 바뀔만큼 치열한 전투였다. 결국 백마고지를 차지한 9사단은 현재도 부대 애칭을 백마부대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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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과 북한 김일성, 펑더화이 중공군 사령관이 협정문에 최종 서명하면서 정전협정이 발효됐다. 이 협정으로 남북의 적대행위는 일시적으로 중단됐지만 전쟁 상태는 계속되는 국지적 휴전상태가 됐다. 6·25 전쟁으로 인해 전 국토는 잿더미가 됐다. 특히 유엔군 15만여명과 국군 55만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북한군과 중공군 역시 165만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민간인 피해 역시 막대했다. 총 100만여명에 가까운 민간인이 학살·사망하거나 부상·납치·행방불명됐다. 10만여 전쟁고아와 1000만명에 달하는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이었다.
지난 달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반도에서 더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러면서 연내 종전선언을 진행하고 이어 평화협정을 추진키로 합의했다. 종전 선언은 말 그대로 전쟁을 끝낸다는 의미다. 연내 종전 선언이 현실화 할 경우 6·25 전쟁은 역사교과서에 ‘한국전쟁(1950~2018)’으로 기록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