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이데일리가 만난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 조사부 정정욱(사법연수원 39기) 검사는 탁월한 수사 성과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검사의 가장 영예로운 포상인 2022년 하반기 ‘모범검사’로 선정됐다. “감히 받을 수 없는 상인데 운이 좋았다“는 정 검사의 겸연쩍은 웃음 한편엔 범죄자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정 검사는 여성·아동 범죄 피해자들을 성심성의껏 도운 공로로 검찰총장·법무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는 “피해자들은 마음의 상처가 깊숙이 남아 10년이 지나도록 고통받는다”며 “눈에 보이지 않는 내상이 있기 때문에 심리치료 등 검찰이 제공하는 모든 피해회복 지원을 받으실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도 피해자의 절반가량은 검찰의 지원을 거절한다고 한다. 생업에 쫓기거나, 피해 사실을 밖으로 털어놓는 데 어려움을 겪는 탓이다. 정 검사는 “그분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꼭 상처를 치유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검찰은 정 검사가 억울한 피해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놓치지 않은 점도 높이 평가했다. 일례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외국인 피의자의 사정을 끝까지 경청한 정 검사는 신고 여성으로부터 ‘허위로 신고했다’는 자백을 받아내기도 했다.
정 검사는 “사소한 악감정을 갖고 고소를 악용하는 자들을 더러 볼 수 있다”며 “제가 기소를 하는 순간, 당사자는 인생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 혹시나 억울한 부분은 없는지 정말 신중하게 사건을 재검토한다”고 강조했다.
◇ “약자 범죄도 비대면으로 진화…‘반드시 처벌’ 알려주는 게 검찰의 할 일”
탁월한 수사 성과를 인정받은 정 검사지만, 사실 그도 범죄자들을 엄벌하는데 무거운 마음이다. 정 검사는 불법촬영 범행을 반복하다 붙잡힌 젊은 남성 피의자 사례를 소개했다.
정 검사는 “이 피의자는 자신을 심하게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스스로 성충동 장애 문제가 있음을 알고 병원도 갔지만 해결이 안 됐다. 오죽하면 저한테 화학적거세 조치를 내려달라고 했다”며 “현행법상 불법촬영 혐의만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피의자를 엄벌하는 것만으로 사건을 마무리 짓기 보다는 근본적인 갱생·교정 방안이 제공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정 검사는 이어 “제 앞에 서는 피의자들 대부분 주변 환경이 불우하다.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데 뜻대로 안 돼 좌절한 경우가 많다”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소수의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성격장애)를 제외하고 사람 자체가 미운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여성·아동을 타깃으로 한 비겁한 범죄를 꾀하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는 요청에 정 검사는 “범죄를 저지르면 물론 1차적으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고통받지만, 본인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처벌과 책임이 반드시 뒤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며 “무슨 행동을 하기 전에 제발 자기 자신을 위하고, 생각하고, 또 가족들을 아끼는 마음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정 검사는 “요즘은 ‘n번방 사건’ 등 비대면으로도 약자에게 해를 가하는 범죄사례가 늘고 있어 걱정이다. 범죄자들은 익명성 속에 숨어서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듯 하다”며 “하지만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게 검찰의 할 일”이라고 말했다.
정 검사는 또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서 행복한데 과분한 상까지 받았다. 앞으로도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할 일을 하겠다”며 “더더욱 사건들을 성실히 살펴 억울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도록 하겠다”고 목표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