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아동 대상 비겁한 범죄 반드시 붙잡힙니다"

이배운 기자I 2023.01.05 07:00:00

''2022년 모범검사'' 중앙지검 정정욱 검사 인터뷰
탁월한 수사 성과에 피해자 지원 노력도 인정
"범죄 피해 상처 안으신분들 꼭 치유 받았으면"
"익명성에 숨은 비대면 범죄, 반드시 처벌한다"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지난해 7월 부산의 야심한 밤, 30대 남성 A씨는 만취한 여성 B씨를 자신의 차에 태워 청테이프로 묶고 강제로 키스를 시도했다. B씨는 A씨의 혀를 깨물어 3cm가량을 절단했고, A씨는 적반하장격으로 B씨를 고소했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 조사부 정정욱 검사 (사진=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만취한 탓에 당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던 B씨는 졸지에 가해자로 몰릴뻔했지만, 다행히 딱한 사정을 꿰뚫어 본 사람이 있었다. 정정욱 검사는 과학적 기법까지 동원한 치밀한 보완수사로 A씨의 성범죄 고의를 낱낱이 드러냈고, 그 결과 법원은 B씨의 정당방위를 인정했다.

4일 이데일리가 만난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 조사부 정정욱(사법연수원 39기) 검사는 탁월한 수사 성과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검사의 가장 영예로운 포상인 2022년 하반기 ‘모범검사’로 선정됐다. “감히 받을 수 없는 상인데 운이 좋았다“는 정 검사의 겸연쩍은 웃음 한편엔 범죄자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정 검사는 여성·아동 범죄 피해자들을 성심성의껏 도운 공로로 검찰총장·법무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는 “피해자들은 마음의 상처가 깊숙이 남아 10년이 지나도록 고통받는다”며 “눈에 보이지 않는 내상이 있기 때문에 심리치료 등 검찰이 제공하는 모든 피해회복 지원을 받으실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도 피해자의 절반가량은 검찰의 지원을 거절한다고 한다. 생업에 쫓기거나, 피해 사실을 밖으로 털어놓는 데 어려움을 겪는 탓이다. 정 검사는 “그분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꼭 상처를 치유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검찰은 정 검사가 억울한 피해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놓치지 않은 점도 높이 평가했다. 일례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외국인 피의자의 사정을 끝까지 경청한 정 검사는 신고 여성으로부터 ‘허위로 신고했다’는 자백을 받아내기도 했다.

정 검사는 “사소한 악감정을 갖고 고소를 악용하는 자들을 더러 볼 수 있다”며 “제가 기소를 하는 순간, 당사자는 인생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 혹시나 억울한 부분은 없는지 정말 신중하게 사건을 재검토한다”고 강조했다.

◇ “약자 범죄도 비대면으로 진화…‘반드시 처벌’ 알려주는 게 검찰의 할 일”

탁월한 수사 성과를 인정받은 정 검사지만, 사실 그도 범죄자들을 엄벌하는데 무거운 마음이다. 정 검사는 불법촬영 범행을 반복하다 붙잡힌 젊은 남성 피의자 사례를 소개했다.

정 검사는 “이 피의자는 자신을 심하게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스스로 성충동 장애 문제가 있음을 알고 병원도 갔지만 해결이 안 됐다. 오죽하면 저한테 화학적거세 조치를 내려달라고 했다”며 “현행법상 불법촬영 혐의만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피의자를 엄벌하는 것만으로 사건을 마무리 짓기 보다는 근본적인 갱생·교정 방안이 제공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정 검사는 이어 “제 앞에 서는 피의자들 대부분 주변 환경이 불우하다.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데 뜻대로 안 돼 좌절한 경우가 많다”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소수의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성격장애)를 제외하고 사람 자체가 미운 경우는 많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여성·아동을 타깃으로 한 비겁한 범죄를 꾀하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는 요청에 정 검사는 “범죄를 저지르면 물론 1차적으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고통받지만, 본인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처벌과 책임이 반드시 뒤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며 “무슨 행동을 하기 전에 제발 자기 자신을 위하고, 생각하고, 또 가족들을 아끼는 마음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정 검사는 “요즘은 ‘n번방 사건’ 등 비대면으로도 약자에게 해를 가하는 범죄사례가 늘고 있어 걱정이다. 범죄자들은 익명성 속에 숨어서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듯 하다”며 “하지만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게 검찰의 할 일”이라고 말했다.

정 검사는 또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서 행복한데 과분한 상까지 받았다. 앞으로도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할 일을 하겠다”며 “더더욱 사건들을 성실히 살펴 억울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도록 하겠다”고 목표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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