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씨(27·남)는 대학교 졸업 후 올해 초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며 그는 외부 활동을 하지 못했고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가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한 달 살기’였다.
이씨는 “코로나가 그나마 잠잠해진 지금도 아직 해외여행은 꺼려지는 게 사실”이라며 “대신 장소를 제주도로 정했다”고 말했다.
최근 청년들 사이 ‘한 달 살기’가 버킷리스트로 떠오르고 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못가는 대신 국내 유명 여행지에서 한 달 가량 살면서 힐링을 취하는 것.
특히 단순히 여행목적만이 아니라 게스트하우스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것을 병행한다.게스트하우스 직원으로 일하면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을뿐만 아니라 여행에 필요한 경비도 충당할 수 있어서다.
블로그, 유튜브 등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한 달 살기 후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장소도 제주도, 속초, 강릉 등 다양하다.
한 달 살기 스태프가 하는 일은 간단하다.
게스트하우스 손님들의 체크인·체크아웃을 돕거나 객실 청소, 빨래 등이다. 숙박자들끼리 함께하는 파티가 있는 숙소의 경우 스태프가 파티준비를 해줄뿐만 아니라 파티에 동참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게스트하우스 정보 카페를 창구로 스태프를 모집하고 또 지원한다. 카페 ‘스태프 모집 방’ 메뉴에는 하루에 20건이 넘는 공고가 올라오며 각 게시글의 조회수는 500회를 넘는 등 인기였다.
해외여행 대신 국내여행…편리함이 이유
코로나19가 급속히 번져 해외 항공길이 막히자 사람들은 국내를 선택했다.
제주도의 A게스트하우스 직원 박모씨(24·남)는 "한 달 살기나 보름 살기를 오는 손님들 대부분 해외여행이나 유학 계획 등이 취소된 뒤 오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어 "(제주도에서) 지내다보니 제주도의 매력에 빠져서 계획보다 더 오래 머무는 사람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온 박소연(23·여)씨는 "대학교 3학년까지 마치고 그냥 멀리 떠나고 싶어 유럽 여행 계획을 짰다"며 "하지만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을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모든 게 피곤한 상태여서 비행기 표가 가장 싼 날 계획 없이 제주도를 오게 됐다"고 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하면서 한 달살기를 경험한 사람들은 편리함과 가성비 적인 측면을 장점으로 꼽았다.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 중인 이모씨(27·남)는 “여행 중에 안정적인 숙소가 있다는 게 좋고 휴무 때도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휴무 땐 개인 시간 보장도 되니 마음놓고 여행도 다닐 수 있다”고 전했다.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점도 청년들이 한 달 살기를 가는 이유이다.
강릉에서 한 달 살기를 경험한 임모씨(23·남)는 “성수기엔 사람이 하루 200명 가까이 오기도 한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얘기를 듣는다”며 “살면서 가장 짧은 기간에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덧붙였다.
청년층 사이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하는 데에는 휴식을 중요시하는 20대의 가치관도 반영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흔 대학내일20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밀레니얼 세대들이 일상에서도 스트레스와 컨디션 관리를 위해 노력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힐링이나 자신의 멘탈을 챙기는 데 관심이 많은 편이다”고 전했다.
사장들“스텝들과 어울리며 즐거워…상부상조”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사장들은 실제로 많은 청년이 한 달 살기를 도전한다고 전했다. 사장들에게도 한 달 살기를 하러 온 청년들과 함께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것은 다양한 장점이 있었다.
제주도 서귀포 라봉게스트하우스 사장 최용준(32·남)씨는 “젊은 청춘들 사이 트렌드인지 버킷리스트처럼 많이들 온다”며 “방학시즌과 같은 성수기에는 공고글 하나에 40~50명 정도 지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며 나도 배우는 점이 많아 (한 달 살기를) 운영하는 것 같다”며 “시끌벅적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니 좋은 에너지를 받아 운영에 시너지 효과를 얻는 것 같다”고 전했다.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직원들과 어울리며 외롭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제주도 애월 김군아미고게스트하우스 사장 이양일(32·남)씨는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 스태프 모집을 하면 하루에 10명 내외로 연락이 올 만큼 인기가 많다”고 했다. 이어 “처음엔 지출 절약이라 생각했는데 지내다 보니 함께하는 스태프들이 있어 외로움이 덜어진다”며 “‘잘 지내다 간다’, ‘행복했다’는 말을 들을 때 보람이 커 계속해 스태프를 모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도 애월 설레임게스트하우스 사장 서원석(39·남)씨도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오니 색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며 “스태프들과 함께하다 보니 나도 어느새 스태프들과 함께하는 문화에 적응했다”고 했다.
/스냅타임 신현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