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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화성에 있는 반도체 장비업체 A사는 코로나19 여파가 본격화하기 시작한 지난 3월, 운전자금 10억원을 빌리기 위해 은행권과 정책기관을 모두 다녔지만 실패했다. 해외 판로와 원부자재 조달이 막히면서 매출은 이미 전년보다 70% 이상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앞서 기술보증기금과 시중은행 등을 통해 받은 50억원 규모 기존 대출이 발목을 잡았다.
A사 대표 박모 씨는 “코로나19 자금을 문의했지만 은행에서는 보증 한도나 추가 담보 여부를 따지며 소극적으로 심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으로부터 주문을 받으면 원부자재를 구매해 장비를 제작해야 하는데 원부자재를 살 자금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돈줄이 말라 허덕이는 중소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지난 3월 29조원 규모의 금융 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을 내놓았지만 중소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경영난을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고 토로한다. 뿐만 아니라 집행마저도 더뎌 8일 기준 정책자금 소진율은 48%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소상공인 대상 금융지원 소진율은 76%에 달한다.
이 때문에 당장 운전자금이 필요한 중소기업들은 은행 창구를 찾지만 추가 담보를 요구하거나 낮은 신용도를 빌미로 대출을 거절당하며 이중고를 겪는 실정이다. 정책자금뿐 아니라 시중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자금줄이 꽉 막혀 고사위기에 놓인 셈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전국 1234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관련 중소기업 업종별 피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더라도 76.2%는 ‘자금 부족’과 ‘매출 감소’로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매출이 줄면서 경영 상황이 악화하고 이로 인해 신용도가 떨어져 자금을 조달하기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서울 성동구에 있는 섬유제조업체 B사는 최근 급한 자금을 빌리기 위해 시중은행 여러 곳을 들렀으나 신용등급이 B에서 E로 떨어져 대출이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 월평균 주문량이 전년 절반 수준으로 떨어져 매출이 반 토막 났기 때문이다. B사 대표는 “이미 공장을 담보로 수억원대 대출이 있어 추가 대출은 어렵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희재 서울대 교수는 “정부가 재정을 통해 중소기업에 대한 보증을 확대해 은행권에서 중소기업들에 추가 대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또 중소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를 정부가 사주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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