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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 속 비닐하우스서 숨진 이주노동자…유족, 국가배상 손배소 패소

이재은 기자I 2024.08.30 06:50:34

法 “제출 증거만으로는 인과관계 입증 어려워”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 속헹, 한파 특보 날씨에
난방 끊긴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
“국가, 단 한 차례도 근로감독 실시하지 않아”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한파 속 난방이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지내다 숨진 이주 노동자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사진=방인권 기자)
서울중앙지법 민사49단독(부장판사 조영기)은 지난 29일 숨진 캄보디아 이주 노동자 속헹씨의 유족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외국인 근로자도 주거권, 건강권 등이 국내 근로자와 동일하게 인정되고 국가배상법상의 국가책임을 판단하는 것도 동일한 잣대로 위법사항, 불법행위 법리에 따라 판단하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다만 “이 사건에서 망인의 사인으로 확인된 증거자료 내용과 당시 기숙사 내부 상황 등의 제반요소 종합해보면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 망인의 사망과 원고가 주장하는 국가의 부작위, 의무위반 사이 상당인과관계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2021년 12월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캄보디아 노동자 속헹 1주기 추모제에 참석해 추모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속헹씨는 2020년 12월 20일 전기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난방이 끊긴 경기 포천시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는 한파 특보가 내려진 영하 20도의 날씨였으며 속헹씨의 사인은 간경화로 인한 식도정맥류 파열로 확인됐다.

이후 구성된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대책위원회는 “이주노동자 숙소 실태를 전면 조사해야 한다”며 사업장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속헹씨가 무허가 시설에서 생활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속헹씨의 유족은 2021년 12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상금(유족보상 및 장례금)을 신청했고 2022년 5월 이를 승인받았다. 또 2022년 9월 국가를 상대로 1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 측을 대리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노동위원회 소속 최정규 변호사는 지난 29일 입장문을 내고 “1심 결과가 너무 아쉽고 유족들과 상의해서 가급적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 정부가 (속헹씨에게) 지정·알선한 이 사업장이 근로기준법, 산업안전기본법 등 노동법령을 준수하지 않아 건강권과 주거권이 취약한 상태였다는 것은 산재 승인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며 “이번 소송을 통해 속헹씨 사망 전에 이 사업장에 대해 단 한 차례도 근로감독을 실시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이번 판결은 한국에 이주노동자를 송출하는 17개 국가, 더 나아가 전 세계 시민들의 공분을 살 것”이라며 “항소와 더불어 국제사회와 연대해 한국 정부의 무책임한 행태를 문제 삼을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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