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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성기 박일경 기자] 국제결혼중매업체를 통해 17세 연상인 정모(40)씨와 맞선을 본 베트남 국적의 여성 A(23)씨는 지난 2015년 7월 정씨와 혼인신고를 마치고 같은 해 12월 결혼이민(F-6) 체류자격으로 국내에 입국해 동거를 시작했다.
이듬해 1월 아이를 갖게 됐지만, 임신 5주째 유산을 했고 고부 갈등이 심해지면서 7월부터 별거를 하게 됐다. 이혼소송을 제기한 A씨는 “정씨와 이혼하고, 정씨는 A씨에게 위자료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확정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정씨의 주된 귀책사유로 인해 혼인관계가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탄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이혼 후 발생했다. 이듬해 5월 결혼이민 체류기간 연장 허가를 신청했지만, 출입국당국은 ‘(이혼 관련)배우자의 전적인 귀책 사유를 발견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허가를 거부했다.
A씨는 체류기간 연장을 불허한 데 대해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혼인관계 파탄에 있어 정씨에게 ‘전적인’ 귀책사유가 아니라 ‘주된’ 귀책사유가 있다고만 판시돼 있고 경위 및 책임의 정도 등을 참작해 정한 위자료 액수도 100만원에 불과하다”며 “A씨가 혼인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집을 나간 지 불과 보름 만에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고 지적했다.
2심 재판부 역시원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A씨 측 항소를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결혼이민 체류자격 요건인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이란 혼인파탄의 주된 귀책사유가 한국인 배우자에게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전제한 뒤, “이혼확정 판결이 있고 그 판단을 뒤집을 만한 특별한 사정도 없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건의 쟁점은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에서 정한 결혼이민 체류자격 요건 △체류자격 요건 충족 여부에 관한 증명책임 △체류자격 거부처분 취소 소송 관련 이혼확정판결의 증명력 세 가지였다.
재판부는 우선 체류자격 요건과 관련,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람’이란 주된 귀책사유가 대한민국 국민인 배우자에게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외국인 배우자에게는 전혀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에 한해 적용한다면 재판상 이혼 등 혼인관계를 적법하게 해소할 권리를 행사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게 되고 이를 악용해 외국인 배우자를 부당하게 대우할 가능성도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체류기간 연장 신청을 허락하지 않은 처분 사유에 관한 증명 책임은 출입국 관리 담당 행정청에 있다고 봤다. 아울러 가정법원의 이혼확정판결에 재심사유와 같은 중대한 흠이 있지 않은 이상 가정법원이 이혼확정판결에서 내린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결혼이민 체류자격의 입법 취지에 반하는 출입국 행정 실무 및 하급심 재판의 잘못을 바로 잡고 한국인 배우자의 부당한 대우로 이혼하게 되었음에도 출신국으로 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결혼이주여성의 인권을 보호했다는 점에 이번 판결의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